컴퓨터회사와 통신회사가 연합해 영상 대화의 실용화를 추구하고 있다.

공간을 초월해 무릎을 맞대고 얘기하는 것같은 만남을 창조해 내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 앨카미노 리얼에 위치한 부룩사이드 인.

미국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관이다.

이 곳에는 빌 윌킨슨씨(72)가 장기 투숙객으로 있다.

하루 숙박비는 20달러선.

아침 식사 포함이다.

임대주택이나 양로원보다 생활비가 적게 들고 청소를 대신해주며 식사
걱정도 덜어주는 여관에서 지내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윌킨슨씨 이외에도 노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윌킨슨씨는 시카고에 아들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고향인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윌킨슨씨의 얼굴이 유난히 밝아보였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 보죠?"

"오늘 아들과 손자를 만나는 날이에요"

"그럼 시카고로 여행을 가시나요"

"아니요"

의아하게 생각하는 기자에게 그는 "전화로 아들과 손자의 얼굴을 본다"고
했다.

미 통신회사 MCI사와 지역 신문사 산호제이 머큐리에서 함께 만든
멀티미디어 센터에 가면 무료로 영상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4살짜리 손자의 얼굴을 영상으로나마 보는 것은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즐거움이다.

윌킨슨씨는 수천마일 떨어져 있는 손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통화를 끝낸 윌킨슨씨는 손자의 얼굴을 즉석에서 비디오 프린터로 사진으로
뽑아 가슴에 품고 있었다.

MCI사 이외에도 AT&T 스프린트네트 퍼시픽벨등 통신회사와 컴퓨터 회사들이
연합해 이같은 영상전화를 오는 96년에는 실용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리건주 힐스보로에 위치한 인텔 멀티미디어 연구소.

CPU의 강자로 실리콘밸리에 강력한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 인텔사가
멀티미디어의 선두주자로 거듭나기 위해 만든 연구소다.

이 곳에서는 PC용 영상회의 시스템(시스템명:프로셰어)과 멀티미디어
관련기기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안내를 맡은 홍보담당자 럴프 본드씨(37)가 우선 방문객용 전시장에
있는 PC앞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화면에 갑자기 "WELCOME MR KIM"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화면 한쪽에 "프로셰어" 개발자인 케빈 오커넬씨(34)의 얼굴이 나타났다.

다른 방에 있는 오커넬씨가 멀티 PC를 이용해 영상회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본드씨가 기자도 멀티PC앞에 앉아 대화에 나서보라고 권했다.

열번 듣는 것보다 직접 한번 해보는게 났다는 얘기였다.

오커넬씨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했다.

그는 프로셰어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화면에 보여줬다.

빨간색 사인펜으로 화면에 밑줄을 치며 중요한 점은 강조하면서 얘기했다.

"이 수치는 옛날 것"이라며 지우개로 화면의 일부를 지우고 새로운 숫자를
입력했다.

마치 옆에 나란히 앉아 하나의 PC를 놓고 작업하는 느낌이 들었다.

"멀티미디어는 떨어져 있으면서 함께 쓰는 컴퓨터라는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했다"고 오커넬씨는 말했다.

그동안의 네트워크는 단지 데이터를 빨리 교환하는 수단이었다.

자료를 보는데 있어 시차는 여전히 존재했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네트워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같은 자료를
함께 보고 공동 작업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공간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 시간의 차이도 없앴다.

멀티미디어는 사람사이의 정은 그대로 남겨두고 정보의 생산성은 높이고
있다.

네트워크를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 김승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