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본격적인 확장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8.5%로 잠재성장률(7%안팎)을 훨씬 웃돌았다.

이는 지난 91년 상반기(10.0%)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추세는 하반기에도 계속되고 있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런 호황에도 불구하고 부도업체와 부도율은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지난8월중 서울지역부도율은 0.12%에 달했다.

한은이 부도집계를 시작한 지난85년이후 최고수준이다.

전국어음부도율도 0.17%로 역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경기는 좋아지고 있는데도 부도업체는 증가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호황속의 부도급증"이란 "이변"을 연출하고 있는 원인은 여러가지다.

가장 큰 원인은 "경기양극화".

경공업보다는 중공업이,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 경기활황을 주도하고
있다는게 경기양극화다.

즉 중공업 대기업 수출기업만이 활황세를 타고 있을뿐 경공업 중소기업
내수기업은 여전히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4분기중 중화학공업은 13.1%성장, 전업종 성장률 8.1%를 앞질렀다.

반면 경공업은 2.9%성장에 그치는 불균형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신발산업은 오히려 24.4%나 후퇴했다.

섬유의복업도 0.1%성장에 그쳤다.

중화학공업이 스폿라이트를 받는 동안 경공업은 그늘에서 고통을 곱씹었다
는 얘기다.

이 와중에서 신발업종을 비롯한 경공업업체들이 무더기로 부도를 내고
쓰러진게 부도율을 높인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산업구조조정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경제구조가 고도화됨에따라 이른바 "사양산업"등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쓰러졌다.

지난 1~7월중 서울지역에서 부도를 내고 문을 닫은 기업은 4,943개로
전년동기(4,375개)보다 568개나 늘었다.

이들 대부분이 사양산업이었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부도업체수만 급증한 것은 아니다.

신설업체는 오히려 더 많이 늘었다.

1~7월중 신설법인은 5,906개에 달했다.

전년동기에 비해 1,125개나 늘어난 수준이다.

이로 미뤄볼때 경기확장에 발맞춰 산업구조조정이 활발히 이뤄졌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한은의 통화관리강화도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8월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연말억제선인 6.0%에 이르자 한은은
총수요관리차원에서 돈줄을 조였다.

그러자 금융기관창구가 얼어붙었고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중소기업
이었다.

곳곳에서 어음할인을 거절당하는 중소기업이 줄을 이었고 상당수 기업은
도산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이밖에 신용보증기금의 재원고갈과 금융기관의 경영패턴변화도 기업부도를
부추긴 원인으로 지적된다.

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에 신용으로 보증을 서주던 신용보증기금은 재원이
바닥나 신규보증이 더 이상 불가능한 상태다.

보증기금의 재원은 한정돼 있는 반면 보증서준 업체가 부도나 대신 물어준
돈(대위변제)은 눈덩이처럼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보증서를 마련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은행에서 돈빌리기가 힘들어
졌다.

금융자율화에 따라 은행들의 책임경영이 확립되면서 대출업무가 더욱 강화
됐다.

부실여신을 줄이는 것이 당면과제로 떠오른 은행들은 심사업무를 강화,
담보가 없는 기업들은 높아진 은행문턱을 실감해야 했다.

< 육동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