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에 뜬 산 그림자를 깨며 나룻배가 건너가고 있다. 논물에서 비단
개구리가 배를 뒤집을 때면 봄이었다. 여름이면 모기를 쫓느라 피워놓은
쑥불연기가 삼베적삼에 스며들었고 돌담아래 앵두가 익으면 여름도 다가는
구나 싶었다.

마단에 멍석이 깔리고 빨간 고추가 널리는 날이면 가을이 왔구나 생각됐고
바람소리에 옥수수대가 우수수 떨리면 또 그렇게 가을이 가곤했다. 타작
마당의 모닥불이 꺼져가면 겨울은 왔다.

새 이얼을 해 덮은 굴뚝마다에 솟아오르는 저녁연기속에 겨울밤은 깊어가고
문풍지를 울리며 겨울바람이 지나가며 또다시 새로운 봄을 약속한다..."

60년대,70년대를 청소년으로 살아온 우리네 장년층의 고향모습은 바로
이런 모습일게다.

고향의 향기는 곧잘 흙의 진리로 비유된다.

하늘의 은혜는 누구도 가리지 않는 법.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에 따라 곡식을 영글게 하는 차이는 있을을 지언정
누구에게 따로 시혜하는 일이 없이 열매를 익게한다.

비는 골고루 내리고 바람 또한 그렇게 꽃가루를 날려서 씨앗을 배게 만드는
것이다.

거름을 내명서 우리네 옛 선조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먹고 남은걸 거름으로 땅에 뿌려 또 그것으로 곡식을 키워 다시 먹는,
자연의 그 순한 이치를.

3대쯤의 이야기는 담배한데 피우는 사이면 하나의 선으로 꿰어져 나오는,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니었고 울타리가 있다지만 그것을 넘어서 열려있는,
마을은 집안이었고 언제 누구와 혼담이 오갈지 모를 가계였다.

날이 저물면 밤길을 걸으며 마을을 지나가게 하지 않고 나그네를 재워
보냈던 그 인심을 이제는 어디에서 찾을수 있을 것인가.

"고향을 알기위해선 타향으로 가야한다"고 했던가.

지난간 과거는 깨달음과 회한의 거울.

거기서 우리가 걸어야할 이정표가 세워지고 그 날들이 쌍혀서 내일이 된다.

고향이 주는 그 뜻을 잊지 않아야 한다.

마음속의 고향, 그 소중한 향기를 새기며 마음의 벽을 넘어 우리 이웃,
진정한 땀의 의미를 생각하자.

한국인만의 따뜻한 정을 회복하는 것만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자리를
옛 고향처럼 훈훈하게 만드는 길이라 믿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