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과 친선을 도모하여 동맹의 길로 발전하느냐,아니면 적대국
이 되어 전쟁을 하고야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자기와 대원군이 
마주앉게 되는 것 같아 사이고는 가벼운 흥분같은 것을 느끼기까지 
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우리에게 해로울 것 없어』 천장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사이고는 중얼거렸다.

일이 뜻대로 잘 풀리면 좋고,그렇지 않고 어긋나서 출병을 하게 
되더라도 일본에게 나쁠건 없다 싶은 것이었다.

출병을 하게 되면 국내의 골칫거리인 사족들의 불만을 일거에 
밖으로 내뿜을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 걱정이 되는 것은 서양 여러나라의 태도였다. 만약 그들이
부당한 일이라고 간섭을 하고 나서면 낭패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간섭을 못하도록 정벌의 확실한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가 희생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었다.

『음 일이 잘 안되려거든 차라리 대원군이 나를 죽여줬으면 좋은데… 
옳지,그자가 끝내 말을 안들을 것 같으면 내가 아주 콧대를 높여
그자를 내리누르듯 여지없이 비위를 건드려 놓아야지.

그러면 그자가 결국 나를…』 사이고는 무슨 대단한 묘책이라도 
떠오른 듯이 혼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곧 등골이 으스스해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는 듯했던 것이다. 조선이라는 낯선 땅에 
가서 죽을 일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곳에는 능지처참이라는 사형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머리와
두 팔,두 다리를 하나 하나 따로 묶어 소가 각기 다섯 방향으로
일시에 끌고 나가도록 해서 몸뚱이를 순식간에 갈기갈기 다섯 갈래
로 찢어 죽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셋푸쿠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잔혹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이고는 몸서리를 쳤다. 어쩌면 대원군이 자기를 그 능지처참으로 
죽일지도 모른다 싶으니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난 사이고는 술을 가져다가 큰 잔에 한잔 자작하여 쭉 들이
켰다. 약을 복용하며 요양을 시작한 뒤로는 입에 대지 않던 술이어서 
취기가 빨랐다. 두잔을 거푸 마시고나니 눈두덩이 혼혼해 왔다.
그제야 으스스하던 기분이 가시고,배포가 벙벙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능지처참이면 어떠냐. 죽기는 다 마찬가지지. 인생 오십인데,벌써
내 나이 마흔일곱이 아닌가. 게다가 몸도 좋지 않으니 오래 살기는 다 
틀렸다구. 이 기회에 기꺼이 죽는 거라구. 암,마지막으로 살신보국을 
하는 거지. 얼마나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