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아테네시 파티시온가에 있는 국립고고학박물관을 돌아보면
전시유물이 고대의 대리석 조각품 일색이어서 전문가가 아니면 돌덩어리만
보고 나온듯한 인상을 짙게 받는다. 카이로의 이집트고고학박물관에서도
역시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집트고고학박물관에는 파라오의 무덤 주위를 장식했던 석조물과
미이라가 유물의 주종을 이루어 "투탕카멘환금가면"을 비롯한 부장품을
보여주는 특별전시실을 제외하면 방대한 전시유물이 모두 그게그것같고
관람을 끝내면 큰 무덤속을 헤매다 나온 기분이다.

그리스고고학박물관에서는 중앙에 마련된 미케네유물 특별전시실의
"슐레만의 황금가면"등 미케네유적에서 출토된 일괄유물과 산토리니섬에서
발굴된 아크로티리유적의 고대 프레스코벽화를 빼놓으면 너무 단조롭고
유물의 수도 기대보다는 적은 것에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정작 좋은
유물들은 다 없어지고 찌꺼기만 남았구나"하는 생각을 지워버릴수 없다.

문명의 발상지인 이 두 나라의 중요한 유물들은 엉뚱하게도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대부분 소장돼 있다. 대영박물관에는 그리스의 유물전시실이
13개실이나 되고 2개실이 로마의 유물전시실이다. 이집트의 유물을 전시한
방이 별도로 마련돼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의 유물전시실도 있다. 요즘도
그리스와 이집트의 문화장관들은 자국의 유물들을 돌려받기위해 영국정부와
활발한 교섭을 벌이고 있으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리스고고학박물관에는 고대의 청동유물이 별로 없다. "포세이돈"
"마라톤 소년" "말달리는 소년" "레슬러"등 실물크기의 몇몇 청동상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작은 유물들이다. 무구는 무사 두사람이 부조된
청동투구의 깨어진 파편조각 한점이 전시돼 있다. 많이 출토되었음직한
청동투구는 BC500~450년에 코린트에서 제작된 것 한점이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을뿐이다. 손기정옹이 소장하고 있는 코린트식 그리스 고대
청동투구와 거의 모양이 같고 그것보다 100년쯤 앞서 제작된 것이기는
해도 머리부분이 쭈그러져 있어 불완전하다.

손옹이 세계적 희소가치를 지닌 이 그리스 고대 청동투구(보물 904호)를
8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다고 한다. 이 투구의 원소유주인 그리스
부라딘신문사의 사주 아라반디노스씨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아마 몹시
후회했을 것같다. 뜻하지 않은 일이지만 이제야 우리도 귀중한 외국문화재
한 점을 소유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