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수단의 발달로 생활속의 의사전달방식이 많이 변화되고 있는 지금도
우리는 한결같이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나를 포함한 세사람이 편지로 우정을 다지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학창시절부터 우리 셋은 삼총사라 불리울 만큼 막역지우였다.

전화시설조차 변변치 못했던 그시절, 서로 집이 멀리 떨어져 있었던 탓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글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곤 했다.

그러기에 25년. 우리가 주고 받은 편지는 무려 7백여통이 넘는다.

실속있는 개인사업을 하고있는 과묵한 성격의 배성면, 그는 성격과는 달리
편지속에 나뭇잎, 꽃잎등을 잘 포장하여 함께 보내오곤 했다.

공직에 근무하는 이순택, 그는 하얀 밤을 새워가며 장문의 내용을 쓰기
좋아했다.

그들과의 서신교류를 통해 나는 내면적으로 성숙할수 있었고, 지금도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우정을 나누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때로는 편지지 한장의 무게보다 가벼운 사연도, 또 때로는 바윗돌 만큼이나
육중한 무게를 느끼게 하는 사연도 있었지만 언제나 진실과 우정이 담겨져
있는 사연들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기록들이기도 하다.

서로의 집에 처음 전화를 설치한 때에는 편지를 통한 우리들의 만남이
중단될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전화보다는 편지로 서로의 소식을 알고자 했던
이순택의 고집이 있었기에 2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편지질"은 계속되고
있다.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아 키우다 보니 지금은 그 횟수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요즘도 우리는 서로의 진실된 추억을 남기고자 편지를 고집한다.

우리 세사람은 두달에 한번 정도는 가족을 동반한 산행을 하고 있다.

가족들끼리도 친숙하게 지낼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자는 내 의견에
친구들이 적극 동의하여 시작된 산행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세가족이 한가족처럼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며 지내고
있다.

언젠가는 그동안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책으로 펴낼 생각이다.

시중에 내놓아 돈을 벌자는 목적이 아니라, 지난 세월 우리가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괴로워했던 많은 일들이 다시 한번 정리해서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수화기를 들고 버튼 몇개반 누르면 천만리 먼곳의 사람도 귀옆에 불러
세울수 있는 요즘 세상의 편리함과 비교하면 한없이 미련한 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리석지만 진실된"
대화를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늦은 밤 빛바랜 편지들을 뒤적일때면 더욱 절실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