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자유시장경제 창달이 정부과제..이종걸 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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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종 걸 <외대교수/경제학> <<<<
몇년전에 타개한 하이에크라는 경제학자가 있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저승의 하이에크선생께 작금의 세계 경제에 대하여
한말씀을 부탁드린다면 아마도 그는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할 것이다.
"보라! 지금 세계는 시장경제가 지배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그리고
동유럽국들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명령계획형 경제에 대한 시장경제의
판정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생명이 없는 물체를 이리저리 옮길수 있고 또 사람들을 강제로
일정한 때에 일정한 곳에 있게 할수는 있지만, 개인으로 하여금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강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도덕적 인격적, 혹은 문화적 보상에 의해서 성취될수 없다.
그러한 인간이 되도록 교육을 통해 개조시킬수도 없다. 시장이라는
제도는 개개인이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선택의 자유를 허용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경쟁이라는 힘의 작용에 의해서 개개인이 의도하지
않았던 질서와 조화의 세계로 나타난다"
하이에크선생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일찍이 통제경제로의 길이 "노예로의 길"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시장, 오로지 경쟁적 시장기구를 통해서 만이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
에게 분산된 형태로 존재하는 지식과 정보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시장기구를 통하지 않고서도 마치 시장에서와 동일한 성과를 얻을수
있다는 시장사회주의자들의 실험 또한 실패로 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하이예크는 시장을 대체하는 정부의 정당치 못한 개입이 왜
재앙을 초래하게 되는가에 관해서 현재 살아있는 프리드먼에게서 그
해답을 찾아 보라고 충고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장에서 무엇을 팔려고 할때 우리들은 사람을 설득할 수밖에 없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남의 이익을 생각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관료기구는 경쟁상대가 없다. 손님도 달리 매달릴 곳이
없다.
따라서 관료의 눈에서 보면 손님의 이익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국민의
희생위에 자기의 이익을 추구한다. 자기의 제국을 확대시켜 나가면서
일의 분량을 줄이려고 한다. 그것이 관료의 본색이다.
잘못은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 그 자체에
있다. 더 기본적으로는 경제시장이 정치시장으로 대체되는 것을 간과해
온 우리에게 최종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경제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프리드먼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동안 비대해진 정부의 비효율적 영역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강화시킴으로써 하이예크가 강조하는 자유시장경제의 역동적인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 신정부는 정부의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시장의 자율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관료들이 대기업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있는 모습에서
나타나듯이 규제하는 정부에서 서비스하는 정부로의 변신모습을 보여
주는데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점은 정부의 축소가 곧 자유시장경제의 체질 강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이유는 기업주의 혹은 대기업주의 의식에 사로잡힌 재벌들이 정부영역
의 축소와 조류를 기독권의 강화기회로 이용하고 정부는 이런 대기업주의
를 민간영역의 강화라는 미명하에 방치하거나 오히려 이에 영합함으로써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가장 경계해야할 정부에 의한 독과점 강화현상이
발생할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이 애덤스미스의 자유경제철할을 당시에
부상하는 기업가들이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이익을 합리화
시키는 이론으로 이용했던 점은 지금 한국 경제에도 대단히 의미있는
시사성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는 무조건 자유방입정책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개입을 줄여야
할 분야가 있지만(예를들어 정부의 주요산업에 대한 진입규제) 다른
한편으로는 공정거래및 독과점 규제, 재산소득에 관한 과세, 공해에 대한
규제, 근로자 복지에 대한 지원등 정부의 역할을 증가시켜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
더욱이 한국의 경제력 집중이 공정한 경쟁과 기업가 정신의 구현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그 원인의 90%이상이 정부의
정책에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소유집중
문제에 대해서 각별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최근 제2이동통신의 단일컨소시업 구성, 그리고 선경의 한국
이동통신 인수과정에서 재벌에 대한 여신관리시행세칙을 무시한 예외조항
적용등에서 나타나듯이 정부는 처음 신경제5개년계획에서 단호하게 표명한
재벌 집중규제의 의지로부터 점차 후퇴하는 인상을 주고있다.
정부의 역할은 다시 재조정돼야 한다. 분명히 독과점의 강화를 방치
하거나 오히려 정부 스스로 이를 허용한다면 시장경제의 단기적 효율성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도 기술혁신을 통한 끝없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
또한 심각하게 저해될 것임에 틀림없다.
자유기업제도는 냉혹한 심판관이기 때문에 기존 기업들은 항상 경쟁을
제한하고자 한다. 정부가 이와같이 자유기업주의가 아닌 기업주의 혹은
재벌기업주의에 영합한다면 경제는 또다른 의미에서 하이예크가 경계한
"노예에의 길"을 걷게 된다는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몇년전에 타개한 하이에크라는 경제학자가 있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저승의 하이에크선생께 작금의 세계 경제에 대하여
한말씀을 부탁드린다면 아마도 그는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할 것이다.
"보라! 지금 세계는 시장경제가 지배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그리고
동유럽국들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명령계획형 경제에 대한 시장경제의
판정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생명이 없는 물체를 이리저리 옮길수 있고 또 사람들을 강제로
일정한 때에 일정한 곳에 있게 할수는 있지만, 개인으로 하여금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강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도덕적 인격적, 혹은 문화적 보상에 의해서 성취될수 없다.
그러한 인간이 되도록 교육을 통해 개조시킬수도 없다. 시장이라는
제도는 개개인이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선택의 자유를 허용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경쟁이라는 힘의 작용에 의해서 개개인이 의도하지
않았던 질서와 조화의 세계로 나타난다"
하이에크선생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일찍이 통제경제로의 길이 "노예로의 길"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시장, 오로지 경쟁적 시장기구를 통해서 만이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
에게 분산된 형태로 존재하는 지식과 정보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시장기구를 통하지 않고서도 마치 시장에서와 동일한 성과를 얻을수
있다는 시장사회주의자들의 실험 또한 실패로 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하이예크는 시장을 대체하는 정부의 정당치 못한 개입이 왜
재앙을 초래하게 되는가에 관해서 현재 살아있는 프리드먼에게서 그
해답을 찾아 보라고 충고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장에서 무엇을 팔려고 할때 우리들은 사람을 설득할 수밖에 없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남의 이익을 생각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관료기구는 경쟁상대가 없다. 손님도 달리 매달릴 곳이
없다.
따라서 관료의 눈에서 보면 손님의 이익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국민의
희생위에 자기의 이익을 추구한다. 자기의 제국을 확대시켜 나가면서
일의 분량을 줄이려고 한다. 그것이 관료의 본색이다.
잘못은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 그 자체에
있다. 더 기본적으로는 경제시장이 정치시장으로 대체되는 것을 간과해
온 우리에게 최종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경제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프리드먼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동안 비대해진 정부의 비효율적 영역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강화시킴으로써 하이예크가 강조하는 자유시장경제의 역동적인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 신정부는 정부의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시장의 자율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관료들이 대기업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있는 모습에서
나타나듯이 규제하는 정부에서 서비스하는 정부로의 변신모습을 보여
주는데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점은 정부의 축소가 곧 자유시장경제의 체질 강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이유는 기업주의 혹은 대기업주의 의식에 사로잡힌 재벌들이 정부영역
의 축소와 조류를 기독권의 강화기회로 이용하고 정부는 이런 대기업주의
를 민간영역의 강화라는 미명하에 방치하거나 오히려 이에 영합함으로써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가장 경계해야할 정부에 의한 독과점 강화현상이
발생할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이 애덤스미스의 자유경제철할을 당시에
부상하는 기업가들이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이익을 합리화
시키는 이론으로 이용했던 점은 지금 한국 경제에도 대단히 의미있는
시사성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는 무조건 자유방입정책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개입을 줄여야
할 분야가 있지만(예를들어 정부의 주요산업에 대한 진입규제) 다른
한편으로는 공정거래및 독과점 규제, 재산소득에 관한 과세, 공해에 대한
규제, 근로자 복지에 대한 지원등 정부의 역할을 증가시켜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
더욱이 한국의 경제력 집중이 공정한 경쟁과 기업가 정신의 구현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그 원인의 90%이상이 정부의
정책에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소유집중
문제에 대해서 각별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최근 제2이동통신의 단일컨소시업 구성, 그리고 선경의 한국
이동통신 인수과정에서 재벌에 대한 여신관리시행세칙을 무시한 예외조항
적용등에서 나타나듯이 정부는 처음 신경제5개년계획에서 단호하게 표명한
재벌 집중규제의 의지로부터 점차 후퇴하는 인상을 주고있다.
정부의 역할은 다시 재조정돼야 한다. 분명히 독과점의 강화를 방치
하거나 오히려 정부 스스로 이를 허용한다면 시장경제의 단기적 효율성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도 기술혁신을 통한 끝없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
또한 심각하게 저해될 것임에 틀림없다.
자유기업제도는 냉혹한 심판관이기 때문에 기존 기업들은 항상 경쟁을
제한하고자 한다. 정부가 이와같이 자유기업주의가 아닌 기업주의 혹은
재벌기업주의에 영합한다면 경제는 또다른 의미에서 하이예크가 경계한
"노예에의 길"을 걷게 된다는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