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9월에 공식출범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15일 마라케시에서 1백
22개국가대표들이 협정문에 서명함으로 8년여의 대장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UR협상을 주도해 온 선진국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블루라운드(BR)
니 그린라운드(GR)니를 들먹이며 개도국들을 쥐어 짜내려는 시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 선진국들의 일방적인 독선을 저지하고 개도국의 이익을
지켜낸 영웅이 있었다. 인도의 제네바GATT주재대사인 발크리샨 주치(56)씨
가 바로 화제의 인물이다. 그는 개도국들의 대변인을 자청, "저임금의
미숙련노동은 교역상품이 아님으로 UR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국경을 넘나드는
이민은 무역협상대상이 될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선진국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서방의 협상당사자들로서는 섬유에서부터 지적재산권문제에 이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사건건 선진국의 주장에 반기를 들고 나서는 주치대사가
그야말로 눈의 가시였을 것이다. "모든 일의 세세한 것까지 꿰고 있는 완벽
주의적인 일벌레"라는 그에 대한 서방측의 평가에서 그같은 주치대사의
"업적"을 읽을수 있다.

그는 이번 마라케시에서 "검은 짐승"(bete noire)이라는 입에 담기 거북한
별명을 하나 더 얻었다. 미국과 손잡고 개도국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호
장벽의 빌미로 삼으려던 프랑스사람들이 그에 대한 섭섭함을 프랑스사람들
답게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라케시에서 주치대사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안 뉴델리를 비롯한 인도
곳곳에서는 UR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시위가 불타고 있었다. 서방국가들이야
어떻게 보든 그는 9억인도인들의 이익을 지켜내는데 최선을 다했고 좀 과장
해 표현하면 다른 개도국들은 그의 그같은 노력에 무임승차한 셈이다.

그에 관한 외신을 접하면서 우리나라통상대표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국내에서 발표한 것과 밖에서 협상하는 내용이 다르다는 지경에 이르는
현실을 보면 혹여 소신없는 우리의 협상관리들이 "개인적인 체면"을 국익에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묻고 싶다.

<이 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