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이십명 가운데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이 하나 있었다.
사다기치였다.

데이지로와 둘이 마주보고 앉아서 서로 상대방의 배에다가 칼끝을 밀어
넣었었는데, 열다섯살인 데이지로가 겁에 질려서 제대로 푹 찌르질 못했었
는지, 상처가 깊지 않아서 끝내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기절을
한채 쓰러져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그에게는 까마귀들도 달려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가 질 무렵 아랫마을의 아낙네 하나가 그 언덕바지에 소년병들의 시체가
수없이 굴러있다는 소문을 듣고 출진한 자기 아들도 혹시 죽지 않았나
싶어서 찾아나섰는데, 시체들 가운데 한 개가 꿈틀거리며 신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다기치는 그 아낙네의 손에 의해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이었다.

이이누마사다기치 - 유일한 생존자가 된 그는 명치유신 후 전신기사가
되어 체신성에 근무하기도 했고, 칠십팔세까지 살았다. 백호사중 이번대의
열아홉 소년병들의 자결은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의 입을 통해서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만년에 셋푸쿠를 했던 무진전쟁 그 당시를 회상하여 다음과 같은
단가를 한수 남겼다.

흘러간 그 세월은 꿈인가 생시인가
하늘에 뜬 흰구름인양 덧없을 뿐이로다.

그런데 그들 소년병들이 자결을 감행할 당시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쓰루가성은 실은 성하의 집들이 타는 연기에 가려져 있었을 뿐, 함락이
된것은 아니었다. 날씨가 우중충했고, 소년병들이 지칠대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 절망적으로 비쳤을 뿐이었다.

다키사와 본진에서 쓰루가성으로 퇴각해 들어간 마쓰다이라는 장기
농성전을 각오하고서 천수각에 올라 지휘를 하고 있었다.

도노구치하라까지 원군을 이끌고 독전을 하러 나갔던 아이즈의 호랑이라는
사가와도 수적으로나 병기의 성능에 있어서 월등히 우세한 관군을 당해낼
길이 없어 별수 없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여 마지막으로 쓰루가성을 방어
하는 작전을 펴고 있었다. 뒤쫓아 몰려오는 관군을 시가지 외곽에서 막아
내려는 것이었다.

멀리서 빙 둘러 쓰루가성을 포위하는데 성공한 관군은 우선 포격을 개시
하여 시내에다 대포알을 수없이 퍼부어댔다. 그래서 성하와 시가지 여기
저기에서 불타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