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시론] 북한 핵개발과 경협..한동우 동양투자금융 사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프랑스혁명후 크라우제비츠가 근대적 전쟁개념을 확립한 이래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든가,정치는 무혈전쟁이요,전쟁은 유혈정치라는 견해등이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실세계에서는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전쟁은 있을수
없으며 일격에 끝나고 마는 전쟁도 상상할수 없다. 전쟁전부터 끊임없는
당사자들의 수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전쟁중에도 유형무형의 대화는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소박한 견해들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흔히 빗나가고 마는 것은
우리들의 참조영역(frame of reference)이 어릴때 경험했던 우발적인 싸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전쟁당국은 마치 정치인이 국민에게 뒤를 안보이듯
우리들의 비좁은 고정관념을 이용하여 적들이 야밤에 기습공격을 해왔다는등
복수심을 돋구며 전쟁참여를 선동하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라
가기 바쁘지만 전쟁과 같은 수싸움에서 쌍방의 기본적 시나리오를 파고 드는
일은 전쟁수뇌부의 참모들뿐 아니라 일반국민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옛
사람들은 천기니 살기니 해서 하늘의 시나리오까지 캐보려했으며 그에따라
국가나 개인의 처신한 자리를 유리하게 잡아나갔다.
최근 북한핵을 둘러싸고 당사국들이 벌이는 심리전 또는 예비전의 시나리오
를 정확히 읽으려면 전쟁에 관한 기본개념을 분명히 해놓고 출발해야 한다.
남한과 북한간의 전쟁요소는 냉전체제의 주변부에서 인위적으로 분할된 종족
간의 편먹기식 대결구도가 설정된데 있다. 또한 어떤 쌍방이 이렇게 50년
가까이 철저하게 증오심을 키워온 사례는 인류역사상 그유례를 찾기 힘들다
하겠다.
양쪽에서 타오르고 있는 증오의 불길은 이제 당국자들 사이에도 제어할수
없게 되었을 뿐아니라 이런 사태를 만들어낸 주위의 강대국조차 속수무책일
지경에 이르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자살극은 양가화해의 돌파구가
되었지만 이나라 신세대들의 통일노력은 결과적으로 더욱 더 증오의 골을
깊게 파들어갈 뿐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통일을 이룬다는 7.4 공동성명은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가 되고 만다.
싸움은 말려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미덕이다. 그러나 하나의 종족을
갈라놓고 극도의 증오감을 주입시킨 강대국들은 이제와서 어떤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가. 근본적으로 한반도의 힘이 커지는 것은 강대국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특히 일본이 그렇다. 통일된 한국을 영향권에 넣을수 없는
러시아도 그럴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세계전략상 남북의 화해를
바랄 것이나 역사적 지리적으로 중국이 더하지 않을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한반도와 그 주변정세를 이렇게 놓고 볼때 북한의 핵개발을 어떤 의미를
갖는가. 먼저 핵무기의 군사적 가치는 얼마나 되는가. 19세기후반에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로 폭탄이 만들어졌을때 그 가공할 살상력으로 하여
세계는 전쟁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많은 사람은 믿었다. 그러나
금세기초에 대전은 일어났고 중반을 넘기전에 또 다른 대전이 일어났다.
핵의 위력은 다만 실상과 파괴력이 엄청나다는데만 있는게 아니라 인류의
파멸을 예고할 만큼 심각하다. 2차대전때 핵무기는 전쟁용으로 사용된게
아니라 그것은 오직 위력을 실증하기 위하여 실험용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제사회에서 재래식 군사력은 거의 쓸모가
없으며 핵무기는 더더욱 그렇게 되어있다. 오히려 군사적 제재말고 경제력
을 포함한 비군사적 제재가 훨씬 효과적인 시대가 되었다. 크노르는 핵무기
개발로 세계대전의 위험이 사라졌으며 군사력의 행사보다 오로지 보유 그
자체의 효용성을 따질때가 되었다고 갈파하였다.
군사력의 효용가치는 폭등진압과 재해방지,나아가 국력과시같은 내수용에
무게가 옮겨지며 국제정치에 있어서도 강대국들이 국지전을 조정통제하는
위세로 활용될 뿐이다.
그렇다면 작은 나라의 핵무기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연히 밝혀진다.
그것은 여러가지 면에서의 내수용일 것이며 또는 매우 불리한 국지전이나
파괴위협으로부터 국가나 정권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가 단독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공언했을때와
똑같이 북한의 핵 개발도 내수용으로 보아야하며 그 한계를 벗어나면
강대국과의 이해관계로 넘어간다. 북한핵에 대하여 처음부터 커다란
경계심을 가져야할 당시국은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이 될수밖에 없는
소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나라에서 북한핵이 더 크게 문제가 되는가. 남한에 대하여
핵공격을 하고도 북한이 살아남는 비법은 없지 않은가. 아마도 6.25의
악몽이 아직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핵을 볼모로
북한의 억압정권이 오래간다면 설령 통일이 된다해도 인민은 오히려 우리
에게 짐이 될것이며 북한의 산천초목만이 우리의 자원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없지 않다.
북한 핵문제가 주변 강대국의 이해와 관련되는 부분은 그들이 해결할 문제
이며 우리는 이들과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 된다. 다만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길핀이 예상한대로 신중상주의로 나아가고 있는듯 보이는데
또한 우리는 그의 경고대로 강대국들이 추악한 중상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견제할 것은 견제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볼때 북한 핵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전략은 분명해 진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라는데 우선 포인트가 두어져
야 한다. 우리기업의 경쟁력을 단시간내에 제고하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외제 부품이 내장된 우리상품의 경쟁력을 과신하거나 보릿고개를 넘긴 것이
언제인데하고 자만할수도 없다. 태어나면서 CATV를 보고 자란 신세대들에게
우리가 내놓을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인 것이다.
왜 이렇게 밝지 않은가를 따져 보지 않고 미래를 밝히는 묘책은 나오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한다면 시간을 벌면서 우리경제력이 가장 유리하게
뻗어갈데는 북한밖에 없다 하겠다.
우리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으로 우리의 경제문제를 푸는 동시에 북한으로
하여금 그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내수용 핵개발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어물어물 헛짚다보면 주변
강대국들은 이것을 호기로 삼아 북한에 대한 시장개척에 나설 것이다.
북한이 일본 또는 미국과 자본기술적으로 교직되어 나간다면 그 시장은
영영 우리로부터 멀어져 갈 것이다. 이때쯤되면 이나라의 강온파 누구도
망연히 오늘의 짧은 식견을 후회하거나 천기를 눈치채지 못한 회한에
빠지는 일은 없을지 걱정을 해본다.
정치의 연장이라든가,정치는 무혈전쟁이요,전쟁은 유혈정치라는 견해등이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실세계에서는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전쟁은 있을수
없으며 일격에 끝나고 마는 전쟁도 상상할수 없다. 전쟁전부터 끊임없는
당사자들의 수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전쟁중에도 유형무형의 대화는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소박한 견해들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흔히 빗나가고 마는 것은
우리들의 참조영역(frame of reference)이 어릴때 경험했던 우발적인 싸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전쟁당국은 마치 정치인이 국민에게 뒤를 안보이듯
우리들의 비좁은 고정관념을 이용하여 적들이 야밤에 기습공격을 해왔다는등
복수심을 돋구며 전쟁참여를 선동하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라
가기 바쁘지만 전쟁과 같은 수싸움에서 쌍방의 기본적 시나리오를 파고 드는
일은 전쟁수뇌부의 참모들뿐 아니라 일반국민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옛
사람들은 천기니 살기니 해서 하늘의 시나리오까지 캐보려했으며 그에따라
국가나 개인의 처신한 자리를 유리하게 잡아나갔다.
최근 북한핵을 둘러싸고 당사국들이 벌이는 심리전 또는 예비전의 시나리오
를 정확히 읽으려면 전쟁에 관한 기본개념을 분명히 해놓고 출발해야 한다.
남한과 북한간의 전쟁요소는 냉전체제의 주변부에서 인위적으로 분할된 종족
간의 편먹기식 대결구도가 설정된데 있다. 또한 어떤 쌍방이 이렇게 50년
가까이 철저하게 증오심을 키워온 사례는 인류역사상 그유례를 찾기 힘들다
하겠다.
양쪽에서 타오르고 있는 증오의 불길은 이제 당국자들 사이에도 제어할수
없게 되었을 뿐아니라 이런 사태를 만들어낸 주위의 강대국조차 속수무책일
지경에 이르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자살극은 양가화해의 돌파구가
되었지만 이나라 신세대들의 통일노력은 결과적으로 더욱 더 증오의 골을
깊게 파들어갈 뿐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통일을 이룬다는 7.4 공동성명은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가 되고 만다.
싸움은 말려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미덕이다. 그러나 하나의 종족을
갈라놓고 극도의 증오감을 주입시킨 강대국들은 이제와서 어떤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가. 근본적으로 한반도의 힘이 커지는 것은 강대국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특히 일본이 그렇다. 통일된 한국을 영향권에 넣을수 없는
러시아도 그럴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세계전략상 남북의 화해를
바랄 것이나 역사적 지리적으로 중국이 더하지 않을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한반도와 그 주변정세를 이렇게 놓고 볼때 북한의 핵개발을 어떤 의미를
갖는가. 먼저 핵무기의 군사적 가치는 얼마나 되는가. 19세기후반에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로 폭탄이 만들어졌을때 그 가공할 살상력으로 하여
세계는 전쟁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많은 사람은 믿었다. 그러나
금세기초에 대전은 일어났고 중반을 넘기전에 또 다른 대전이 일어났다.
핵의 위력은 다만 실상과 파괴력이 엄청나다는데만 있는게 아니라 인류의
파멸을 예고할 만큼 심각하다. 2차대전때 핵무기는 전쟁용으로 사용된게
아니라 그것은 오직 위력을 실증하기 위하여 실험용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제사회에서 재래식 군사력은 거의 쓸모가
없으며 핵무기는 더더욱 그렇게 되어있다. 오히려 군사적 제재말고 경제력
을 포함한 비군사적 제재가 훨씬 효과적인 시대가 되었다. 크노르는 핵무기
개발로 세계대전의 위험이 사라졌으며 군사력의 행사보다 오로지 보유 그
자체의 효용성을 따질때가 되었다고 갈파하였다.
군사력의 효용가치는 폭등진압과 재해방지,나아가 국력과시같은 내수용에
무게가 옮겨지며 국제정치에 있어서도 강대국들이 국지전을 조정통제하는
위세로 활용될 뿐이다.
그렇다면 작은 나라의 핵무기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연히 밝혀진다.
그것은 여러가지 면에서의 내수용일 것이며 또는 매우 불리한 국지전이나
파괴위협으로부터 국가나 정권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가 단독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공언했을때와
똑같이 북한의 핵 개발도 내수용으로 보아야하며 그 한계를 벗어나면
강대국과의 이해관계로 넘어간다. 북한핵에 대하여 처음부터 커다란
경계심을 가져야할 당시국은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이 될수밖에 없는
소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나라에서 북한핵이 더 크게 문제가 되는가. 남한에 대하여
핵공격을 하고도 북한이 살아남는 비법은 없지 않은가. 아마도 6.25의
악몽이 아직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핵을 볼모로
북한의 억압정권이 오래간다면 설령 통일이 된다해도 인민은 오히려 우리
에게 짐이 될것이며 북한의 산천초목만이 우리의 자원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없지 않다.
북한 핵문제가 주변 강대국의 이해와 관련되는 부분은 그들이 해결할 문제
이며 우리는 이들과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 된다. 다만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길핀이 예상한대로 신중상주의로 나아가고 있는듯 보이는데
또한 우리는 그의 경고대로 강대국들이 추악한 중상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견제할 것은 견제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볼때 북한 핵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전략은 분명해 진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라는데 우선 포인트가 두어져
야 한다. 우리기업의 경쟁력을 단시간내에 제고하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외제 부품이 내장된 우리상품의 경쟁력을 과신하거나 보릿고개를 넘긴 것이
언제인데하고 자만할수도 없다. 태어나면서 CATV를 보고 자란 신세대들에게
우리가 내놓을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인 것이다.
왜 이렇게 밝지 않은가를 따져 보지 않고 미래를 밝히는 묘책은 나오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한다면 시간을 벌면서 우리경제력이 가장 유리하게
뻗어갈데는 북한밖에 없다 하겠다.
우리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으로 우리의 경제문제를 푸는 동시에 북한으로
하여금 그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내수용 핵개발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어물어물 헛짚다보면 주변
강대국들은 이것을 호기로 삼아 북한에 대한 시장개척에 나설 것이다.
북한이 일본 또는 미국과 자본기술적으로 교직되어 나간다면 그 시장은
영영 우리로부터 멀어져 갈 것이다. 이때쯤되면 이나라의 강온파 누구도
망연히 오늘의 짧은 식견을 후회하거나 천기를 눈치채지 못한 회한에
빠지는 일은 없을지 걱정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