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업인] 에드먼드 사프라 미국 리퍼블릭금융왕국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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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리퍼블릭금융왕국의 에드먼드 사프라회장(61).
그는 월가의 미스터리맨이다. 대중앞에 서기를 꺼리고 말도 별로 없다.
사생활도 거의 베일에 싸여있다.
그의 생활이 미스터리투성이긴 하나 한가지만은 세상이 다 알고있다.
리퍼블릭내셔널은행과 리퍼블릭뉴욕증권을 비롯 미국과 유럽 남미에
총자산만도 5백억달러가 넘는 10여개의 금융업체들을 거느리고 있는
금융제왕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재산도 20억달러나 된다.
시리아출생의 유태인인 사프라는 성격이 매우 보수적이다. 말은 느리고
행동도 느긋하다. 매사에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이방인이,그것도 많은 사람들의 질시의 대상인 유태인이 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다른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켜서는 안된다.그리고 1등이 되려고 해서
안된다" 그의 경영철학이 왜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하라"인지를 이말
에서 엿볼수 있다.
지난 60년대중반에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에 은행을 설립한후 지금까지
그는 동종기업들과 직접 맞부딪치는 사업은 되도록이면 피했다.
은행설립직후 틈새시장을 파고 들었다. 이윤은 적었으나 다른 은행들이
거의 신경을 안쓰는 분야였기때문이다. 소매은행업이 사프라가 파고든
틈새시장이었다.
파이낸싱을 일으키고 차관을 주선하는것 같은 거창한 일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개인고객들의 돈을 예치받아 이돈을 이자가 좀더
많은 곳에 대출해주고 예대마진만으로 회사를 꾸려나갔다.
맨처음 은행을 직접 차린 것말고는 기존의 다른 미은행이나 증권사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이것도 경쟁과 마찰을 피하려는
보수적인 경영방침에 따른 것이다.
새로 기업을 세울 경우에는 고객을 끌어들이고 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경쟁업체들과의 싸움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기존업체를 인수하면 이미
고객들을 갖고 있어 구태여 고객확보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다.
사프라회장이 금융업체를 인수할때는 한가지 원칙이 있다. 업체의
총자산이 많고적은 것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대신 고객들이 많거나 지정학적으로 주변에 잠재고객이 많이 분포돼 있는
업체들만을 인수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있다.
그가 하고 많은 업종들중 금융업에만 손을 대고있는 것은 집안내력 탓이다.
과거 수대에 걸쳐 그의 조상들은 중동지역에서 은행업을 가업으로 이어왔다.
시리아에서 레바논으로 건너간 부친도 베이루트에 조그만 은행을 차렸다.
사프라회장은 어린시절 정규교육은 받지 않고 집안에서 가정교사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틈틈이 부친의 일을 거들면서 사업을 익혔다.
40년대말 이스라엘건국으로 중동에 반유태물결이 거세지자 그의 가족은
이탈리아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청년으로 성장한후 이탈리아에 난생 처음으로 은행을 설립했다.
그때가 50년대초였고 약관 20대였다.
이후 브라질과 스위스에 지점을 개설,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은행업에 뛰어든지 10여년만인 지난 66년 마침내 세계금융왕국인 미국으로
사업본거지를 옮겨왔다.
그후 근 한세대동안 미국에 살면서 오늘날 자산이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대금융그룹을 일구어내기에 이르렀다.
비록 미국에서는 일등기업을 만들지 않겠다는 사프라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한번 최대기업을 가꾸어보겠다는 야망에 불타 있다.
바로 유태인의 본고장 이스라엘에 최대은행을 만들어보겠다는 목표아래
사업전략을 짜고 있다.
이스라엘 제2의 은행인 르미뱅크를 인수,최대은행으로 키우고 싶은게 남은
인생의 마지막 목표이다.
르미뱅크의 주인은 한 이스라엘국영기업체인데 이 국영기업은 르미뱅크를
매각할 계획으로 있다. 자산이 2백90억달러인 이은행에서 경영권을 행사
하려면 전체지분의 20%만 확보하면된다. 5억달러정도 들이면 이 지분을
매입할수 있다.
그의 야망이 달성될수 있을지는 곧 있을 르미뱅크매각입찰의 결과에
달려있다.
<이정훈기자>
그는 월가의 미스터리맨이다. 대중앞에 서기를 꺼리고 말도 별로 없다.
사생활도 거의 베일에 싸여있다.
그의 생활이 미스터리투성이긴 하나 한가지만은 세상이 다 알고있다.
리퍼블릭내셔널은행과 리퍼블릭뉴욕증권을 비롯 미국과 유럽 남미에
총자산만도 5백억달러가 넘는 10여개의 금융업체들을 거느리고 있는
금융제왕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재산도 20억달러나 된다.
시리아출생의 유태인인 사프라는 성격이 매우 보수적이다. 말은 느리고
행동도 느긋하다. 매사에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이방인이,그것도 많은 사람들의 질시의 대상인 유태인이 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다른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켜서는 안된다.그리고 1등이 되려고 해서
안된다" 그의 경영철학이 왜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하라"인지를 이말
에서 엿볼수 있다.
지난 60년대중반에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에 은행을 설립한후 지금까지
그는 동종기업들과 직접 맞부딪치는 사업은 되도록이면 피했다.
은행설립직후 틈새시장을 파고 들었다. 이윤은 적었으나 다른 은행들이
거의 신경을 안쓰는 분야였기때문이다. 소매은행업이 사프라가 파고든
틈새시장이었다.
파이낸싱을 일으키고 차관을 주선하는것 같은 거창한 일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개인고객들의 돈을 예치받아 이돈을 이자가 좀더
많은 곳에 대출해주고 예대마진만으로 회사를 꾸려나갔다.
맨처음 은행을 직접 차린 것말고는 기존의 다른 미은행이나 증권사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이것도 경쟁과 마찰을 피하려는
보수적인 경영방침에 따른 것이다.
새로 기업을 세울 경우에는 고객을 끌어들이고 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경쟁업체들과의 싸움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기존업체를 인수하면 이미
고객들을 갖고 있어 구태여 고객확보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다.
사프라회장이 금융업체를 인수할때는 한가지 원칙이 있다. 업체의
총자산이 많고적은 것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대신 고객들이 많거나 지정학적으로 주변에 잠재고객이 많이 분포돼 있는
업체들만을 인수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있다.
그가 하고 많은 업종들중 금융업에만 손을 대고있는 것은 집안내력 탓이다.
과거 수대에 걸쳐 그의 조상들은 중동지역에서 은행업을 가업으로 이어왔다.
시리아에서 레바논으로 건너간 부친도 베이루트에 조그만 은행을 차렸다.
사프라회장은 어린시절 정규교육은 받지 않고 집안에서 가정교사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틈틈이 부친의 일을 거들면서 사업을 익혔다.
40년대말 이스라엘건국으로 중동에 반유태물결이 거세지자 그의 가족은
이탈리아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청년으로 성장한후 이탈리아에 난생 처음으로 은행을 설립했다.
그때가 50년대초였고 약관 20대였다.
이후 브라질과 스위스에 지점을 개설,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은행업에 뛰어든지 10여년만인 지난 66년 마침내 세계금융왕국인 미국으로
사업본거지를 옮겨왔다.
그후 근 한세대동안 미국에 살면서 오늘날 자산이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대금융그룹을 일구어내기에 이르렀다.
비록 미국에서는 일등기업을 만들지 않겠다는 사프라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한번 최대기업을 가꾸어보겠다는 야망에 불타 있다.
바로 유태인의 본고장 이스라엘에 최대은행을 만들어보겠다는 목표아래
사업전략을 짜고 있다.
이스라엘 제2의 은행인 르미뱅크를 인수,최대은행으로 키우고 싶은게 남은
인생의 마지막 목표이다.
르미뱅크의 주인은 한 이스라엘국영기업체인데 이 국영기업은 르미뱅크를
매각할 계획으로 있다. 자산이 2백90억달러인 이은행에서 경영권을 행사
하려면 전체지분의 20%만 확보하면된다. 5억달러정도 들이면 이 지분을
매입할수 있다.
그의 야망이 달성될수 있을지는 곧 있을 르미뱅크매각입찰의 결과에
달려있다.
<이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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