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소리와 총소리가 온통 천지를 뒤흔들고 있었고,여기저기 민가는 벌써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었다.

가와이는 마차에 실은 가드링건을 앞장세워 마구 난사하며 전장을 정면
돌파해 갔다. 무난히 성 안으로 들어갈수 있었던 그는 황급히 두 번주
부자를 만났다.

세쓰다야무라의 진영에 나가있던 가와이가 이 싸움판에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네 부자를 구출하려고 성 안으로 돌진해 들어온 것을 알자 두 부자는
감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특히 늙은 전번주 마키노다다유키는,

"군신의 의가 중하다고 하지만,목숨을 걸고 이렇게 와주니 정말 이
고마움을 뭐라고 말로 표현할 길이 없구려"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무슨 그런 당치도 않는 말씀을 하십니까. 도노사마(전양:영주에 대한
존칭)께서 소생한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이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리고 설령 은혜를 입지 않았다 하더라도 가신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만인의 귀감이오. 귀공의 인품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소만,오늘 그
진면목을 보니 나는 그저 고맙고 눈물이 날 따름이오"

"도노사마,눈물을 거두십시오. 우리 나가오카번이 오늘 이지경에 이른 것은
다 소생의 부덕한 소치여서 오히려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니오. 그것은 결코 귀공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소. 귀공은 우리
나가오카번의 평화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하오. 다만 시운이
우리 번을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고,전란 속으로 끌어들였을 뿐이오"

"어찌 되었든 도노사마,이 싸움이 오래 갈 것 같습니다. 오늘은 관군이
대군사로써 우리 나가오카성의 공략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형세로 보아서
이 성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 끝까지 싸울 수도 있습니다만,그렇게
되면 결국 전멸을 하거나 투항을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
성을 내주고,퇴각을 하여 산악지대를 근거로 장기전에 들어갈까 합니다.

소생의 생각으로는 여름과 가을이 지나가고,겨울이 닥쳐오기만 하면
승리는 우리 것이 되리라 굳게 믿습니다. 사쓰마와 조슈의 군사들은
추위에 약합니다. 겨울을 견뎌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은 눈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산야가 온통 눈에 뒤덮였을 때 결판을 내는 겁니다.
틀림없이 모조리 박살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현명한 생각이오. 그렇게 하도록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