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이는 속으로 꽤나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네 번의 운명이
이렇게 젊은,동산도 진무군의 군감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애송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의 손에 달렸다니 말이다.

아무리 전권이 위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선발부대의 지휘관으로 왔으니,
최소한 자기네 진무군의 총독에게라도 탄원서를 보여서 상의를 해야 할게
아닌가. 그런 말을 꺼내려다가 가와이는 참았다. 젊은 녀석이니,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였다. 이와무라가 말을 이었다.

"내가 판단하건대 이 탄원서에는 공순의 태도가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요. 건방지기 짝이 없소. 우리 관군에게 나가오카번에는
들어오지 말라니,들어오면 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니,그런 오만불손한
언사가 공순의 태도에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요?"

"그대목만 떼어서 말씀하시면 안되지요. 그 앞뒤와 연관해서 생각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정부군의 진주를 보류해 달라는 것은 전쟁을 막기 위한
방편인 것입니다. 아이즈(회진)와 구와나(상명)를 비롯한,동맹에 가입한
스물다섯 개의 번을 설득해서 신정부의 방침에 따르도록 하려는 것
아닙니까. 이미 시대가 바뀌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적혀있지 않습니까.
정부군이 우리 번에 진주해 버리면 그런 설득이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그겁니다. 중립일 때에만 가능한 것이지요. 이제 더는 피를 흘리지 않게
하기위한 우리 번의 충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게 공순의 태도가
아니란 말입니까. 새로운 시대를 반기고,진정으로 국가의 앞날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이와무라는 압도 당하는 느낌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리며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에 잠겼다.

가와이는 더는 입을 떼지 않고,가만히 그의 표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잠시 후 이와무라는 눈을 뜨고,반듯하게 뻗은 콧대를 살짝 위로 치켜들며
내뱉듯이 말했다.

"무장 해제를 하시오. 그러면 중립을 용납하겠소""무장 해제를요?"
가와이는 어이가 없었다.

"그렇소"
"그건 바로 항복을 요구하는 것 아닙니까? 결코 중립을 용납하는게
아니지요"
"전쟁을 안하고,중립적 입장에서 열번동맹의 번들을 설득하는데 무장이
무슨 필요가 있소. 우리가 뒤에서 지켜주면 되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