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명언중에 "각삭지도 비막여대 목막여소"라는 말이있다.
사람의 얼굴은 조각할때 처음에 코는 크고 눈은 작게 새려놓고
다듬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번 작게 만든 코는 다시 크게 만들기 어렵고 처음부터 눈을 크게
해놓으면 줄일수가 없는 법이니 모든 일에 있어 처음부터 방법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한진상사를 창업하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신용과
자금관리였다. 한번 잃은 신용을 다시 찾기란 힘든 것이다. 자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사업도 초창기에 자금을 다 쓸어 붓고 회전이
안돼 뒷심이 없게 돼서는 큰 사업을 이룰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 부위기가 어수선했지만 사업을 위해 고객관리이상 중요한 것은
있을수 없기에 신용을 철저히 유지하고 경조사에는 빠짐없이 찾아
다니며 인사를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한번은 함께 일하던 직원이 빌린 자금을 상환하는 심부름을 게을리해
약속한 기일을 하루 넘기는 일이 생겼다. 나로서는 참으로 마음이 아픈
일이었지만 공사를 분명히 구분하고 준일의 경계로 삼기 위해 그 직원을
해고하고 바로 채권자에게 정중히 사과를 한 적도 있다.

돌이켜 생가하면 그때 사업이 비교적 순항을 하게 된 것은, 이렇게
어려움 속에서도 고객에게 신용을 유지하려는 노력에 크게 힘입은
것같다.

운수업 경영에 있어 장비를 고장없이 유지 관리하여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시간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일이 생명이랄 만큼 중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때 내가 기계 장비에 관해 경험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사업을 영위해 나가는데 결정적인 강점이 아닐수 없었다. 스스로
장비의 결핍을 사전에 밸견해내고 사준 수리보다는 예방정비에 치중했다.

당시 우리나라 형편으로서는 중고 차량을 구입할수 밖에 없었는데 부분
부분을 일일이 확인해 엔진 상태가 좋은 차들중에서도 동일제품의 엔진을
장착한 차만 골라 구입했다. 예비엔진을 확보했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교체하기가 손쉬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러나 다른 업자에 비하여
경쟁력이 뛰어나고 사업운영에도 실수가 나올 가능성이 훨씬 줄어들게
마련이었다.

창업한지 5년이 지나자 한진상사는 종업원 40여명을 비롯, 트럭 30대와
화물운반선 10여척을 보유하게 됐다. 이제 중소기업의 규모에서 한창
발돋움할 무렵, 6.25동난이 발발했다.

한진상사의 땀흘려 늘려 놓은 차량과 장비들은 군용으로 증발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나머지 장비들도 어차피 공산군이 밀려들면
음전하게 남아 있을리 만무했다. 이럴때 무조건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내 물건으로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허망한 욕심에 불과하다고
나는 판단했다.

예금을 몽땅 찾아서 그동안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직원들을 모아
액수까지 제시하며 공개적으로 월급을 지급하고 후일을 기약하는 한편
창고문을 열어 전쟁중에라도 직원들이 필요로 하는 장비는 모두 나누어
주었다.

나의 이러한 조치는 세상이 변해가는 분위기에서 하나의 보신책이
되기도 했다. 돈이 생명보다 중요할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앞 일이 막막한 중에서도 이렇게 주변 정리를 마치고 나서야, 나도
겨우 남아 있는 트럭 한대로, 가족들과 함께 피난길에 오를수 있었다.

태평양전쟁에 이어서 이번엔 같은 민족간의 가슴아픈 전쟁이 나의
사업을 원점으로 돌려 놓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