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서울생활에서 인간적인 교류를 갖고싶어 필자는 여러가지 모임을
갖고 있지만 내고향 친구들과의 모임이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모임
이다.

전남 신안군 지도면 당촌리의 지도서국민학교 18회 19회졸업생들인 우리
촌놈들은 서울에 올라와 그동안 먹고 살기에 바빠 서로 자주 만나지도
못하다가 지난 90년에 "얼굴이나 보고살자"며 서우회를 구성했다.

필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이즈음 설립한 나의 회사이름까지 싹도실업
이라고 지었다. 지도상 사옥도(섬)라고 표기된 고향동네 이름이 행정구역명
으로는 지도면 당촌리이지만 우리들은 그곳을 "싹도"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40대중반을 넘어서면서 다시 만난 우리들이지만 모두들 코흘리게 친구들
인지라 만나면 아무런 주저없이 "니" "너"하며 동심으로 돌아가 옛이야기의
꽃을 피운다.

회장에는 대일공무의 김대율부장이 맡고 부회장에는 이미 시집가 아이
엄마가 된 왕년의 싹도콩쿨대회 입상가수인 김정숙이 맡았다. 회원들은
23명이나 되고 두달에 한번씩 정기모임을 갖지만 몇명은 수시로 모임을
갖는다. 특히 개인사업을하고 있는 김수만 김행위 김종수 김상열 김종선
김상열 최범옥 김진옥 은 별도의 골프회동을 수시로 하고 있다.

이들은 필자가 개발한 골프연습용구인 스윙코치로 연습을 하면 누구나
프로가 될수있다는 필자의 꾐(?)에 빠져 골프를 시작했다가 이제는 정말로
프로의 경지로 이를 정도다.

모두 다 모이는 정기모임후에는 으례 노래방에가게 되는데 마이크를 서로
잡겠다며 아우성들이다. 그냥 먹어도 깨끗한 개울물을 마신후 뒷동산에
올라가 목청껏 갈고 닦은 그때의 노래솜씨가 그동안 좀이 설까 걱정한
탓일까.

우리들은 봄가을이면 부부동반에 자식들까지 데리고 우리고향 싹도를
찾는다. 그러면 온동네가 떠들석해진다. 그러나 몇년전 방문시에 둘러본
우리모교 지도서교의 모습은 참으로 썰렁한 느낌을 주었다.

대부분 고향을 떠나버림에 따라 섬학교의 학급수도 줄어버렸고 옛날과
같은 학생들의 시끌벅쩍한 활기를 느낄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11월에 서우회 발기멤버였던 홍용호가 타계하면서 우리들은
비통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여우도 죽을때는 고향으로 머리를
돌린다든가.

우리들도 이제 나이들어가면서 아웅다웅하지 말고 고향을 자주 방문해
옛정취를 되살리면서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모교에 대한 시설지원이나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