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무때부터 추진해오던 대출업무와 관련된 금융부조리 척결대책을
은행장이 되자 더욱 강화해 나갔다.

금융부조리 근절을 위해 기업에 설문을 보내, 대출과 관련해 금품과
향음을 베풀었느냐고 질문해서 답을 받아왔던 것이다. 어느날 그 앙케트
조사에서 금품을 제공했다는 내용과 함께 받은 사람의 이름까지 밝혀져
소동이 일어났다. 받은자는 안받았다고 하고 주었다는 자는 잘못 적었다고
발뺌을 했다. 내용을 더 조사해 보니 그 직원이 추가융자 요청을 담보
부족을 이유로 거절하자 모함성 설문응답을 한것으로 밝혀져 그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앙케트조사 담당부서인 감사실에서는 다른 은행도
다 폐지했으니 실효없는 앙케트조사는 그만 두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 남소장과 의논해서 앙케트조사는 계속하되
무기명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무기명 비밀앙케트로 조사하면 회신한
기업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니 최소환 금품수수가 일어나고 있는지
여부라도 정확히 알수있었기 때문이다. 매분기 실시한 앙케트 회답에서
한두개 기업으로부터 금품수수 여부란에 <>표시가 있었다.

나는 이 비밀앙케트는 과거경험에 비추어 진실여부를 가릴수 없는
것이므로, 그리고 무기명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표시한 기업을
찾아가서 물어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함구령을 내렸다.

나는 비밀앙케트는 내방에 와서 개봉토록 했고 <>표가 있을때는
투명잉크를 양성화시켜 그 대부내용을 조사 보고토록하고 취급한
대부담당 지점장과 대리이름을 적어오라고 했다.

나는 그 대리이름을 감사실장에 주고 대리를 불러 "이놈아 이것보아라.
너희가 돈받았다는 답을 해왔어. 이놈 바른대로 말하라"고 호통을 쳐
시말서를 받으라고 했다.

대부담당대리는 융자를 결정할 권한이 없고 서류를 챙기는 실무자이기
때문에 돈을 받았다고 자백할리가 없었다.
그러나 대선배인 감사실장에게 야단맞고, 시말서 쓰고, 지점에 가자
마자 외진곳으로 전근발령을 받게했다. 대출결정 권한도 없는 대리가
억울하게 욕을 본 결과가 되도록 한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그지점에서 억울하게 대리가 화를 입게된것에 대한
동정과 양심적 가책때문에 앞으로 그지점에서는 대부와 연관된 용돈을
받지않게 되리라는 효과를 기대한 조치였다.

더욱 중요한것은 이것이 소문이 나고 행장 전무가 금융부조리를 직접
조사하고 있다고 알려지게 되어 은행전체에 경종이 됨에따라 중소기업
은행직원은 기업으로 부터 대출과 관련된 금품은 받지않는다는 관례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나이가 젊고 공적으로는 벌을 받은것이 아니며 권한없는 대리가
희생자라고 동정을 받기때문에 신상에 아무런 해가 미치지 않는 이
조치가 나는 오히려 우리은행직원을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은행원은 선량하고 양심적이다. 그러나 그당시는
바깥세상의 혼탁에 휩쓸려 용돈 몇푼 얻어쓰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어 영어의 신세가 되고 가족들까지 수치스럽게 만드는 패가망신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비밀앙케트조사는 유효했던 것으로 믿고있다.

그당시만 해도 은행부조리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고 보도되지는 않았
지만 크고 작은 사건으로 일생을 망치는 은행원이 많았다. 하지만
중소기업은행 직원은 내가 전무와 행장을 지내는 5년동안 단 한건의
금융부조리에 휘말려 불명예스럽게 퇴직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다행스런 일로 생각한다.

나는 이글을 통해 당시 대리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야단맞게 하고
외지로 좌천시킨 일에 대한 진의를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