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은 지난 21일 30대 대기업그룹의 총수와 주요 경제단체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점심을 함께 하며 우리경제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회동을 마친뒤 김대통령은 "살아있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는 유익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한다.

올해의 국정목표를 국가경쟁력의 강화로 내세운 정부 민간기업의 의견을
수렴하고 경제정책의 초점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한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현장정치,생활정치가 강조되는 요즈음의 추세와도
들어맞는다고 하겠다. 또한 시기적으로도 올해는 김대통령이 여러차례
지적했듯이 대통령임기중 유일하게 선거를 치르지 않는 해로서 경제문제에
집중할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처럼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자리에서 오간 얘기들을 대충 간추려 보면
노사관계 안정과 행정규제 완화에 대한 필요성이 많이 거론되었다.
임금문제는 넓게 봐서 노사문제에 포함될수 있으며 금융시장개방은
행정규제완화의 하나로 생각될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갈등은 자본주의경제가 틀을 잡은 뒤로 끊임없이 계속된 핵심문제로서
우리경제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다.
자본의 확대 재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금수준은 노동의 한계생산물에
따라 결정되어야한다는 자본의 논리와 생산성과는 관계없이 최저생계비를
보장받아야 겠다는 노동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려왔다.

그러나 자본축적이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노사양측의 교섭력이 균형을
이루면서 소모적인 갈등을 지양하고 타협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하여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보장해준 것이 이른바
수정자본주의요,복지국가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하며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정부주도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우리경제도 70년대부터 노사분쟁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80년대 중반까지는 권위주의정권의 도움으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이루어졌다. 6.29선언후로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노사분규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면서 그동안의 노사부신까지 겹쳐
생산현장이 마비되고 기업경쟁력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제 지난 몇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가 얻은 교훈은 노사는
상호배타적인 이해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반자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입에 발린 선전이 아니라 분명한 현실이며 당위이다. 기업이 망하면 소속
직원들도 무사할수 없는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면 노사모두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방안은 무엇인가. 하나는 경제성장을 통해 나누어 가질수 있는
몫을 크게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는 일이다.

지난 30여년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계속하면서 노사를 막론하고
생활수준이 크게 나아진 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사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까닭은 경제성장의 과실이
고리대금업자나 부동산투기꾼에게 유출(leakage)되어 노동자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임금 이자 지대 이윤등으로 나누어 볼때 임금과 이윤은
노동자와 경영자의 노력에 대한 대가인데 비해 이자와 지대는 돈과 땅의
사용료로서 생산적인 노력의 대가는 아니다. 물론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나 땅의 사용료를 내는 것은 당연하나 문제는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그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에 있다.

국제수준에 비해 턱없이 높은 금리수준이나 가히 살인적이라 할수 있는
땅값상승에 대해 기업인들이 불평하고 노동자들이 절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물며 각종 급행료 준조세등에 대한 국민감정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또다른 문제는 노사갈등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완화해주어야할 교육제도와
인력충원제도에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몸담고 있는 기업이나 산업이
장래성이 없을때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재교육을 받고
직장을 옮길수 있어야 한다. 고급기술과 지식을 익혀 합법적인 계층상승을
할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현실은 대학간판을 따는데만 매어 있을뿐 교육의
생산성에는 관심이 없다. 하물며 사회교육이나 직업교육에는 눈조차
돌리지 않고 있다. 생활현장과 동떨어지고 생산성이 낮을 수 밖에 없는
이같은 체제는 판.검검사 대학교수 고급공무원등 우리 사회의 지도계층을
충원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직종을 막론하고 사회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실적에 따라 승진하는 외국에
비해 우리는 고시합격과 학위유무 평가가 좌우되며 이에 따라 수많은
부조리가 끼어들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이해관계는 집단이기주의로
나타나며 배타적인 독점이윤을 추구하는데 행정규제는 이같은 뿌리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우리기업,특히 대기업들도 땅이나 돈과
같은 생산요소를 독점함으로써 부당하게 이익을 누린 경우가 적지 않음을
솔직히 반성하고 이제부터는 창조적 파괴(innovation)를 통해 진정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할것이다.

정부가 이러한 노력을 복돋울 때만이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지고
국가경쟁력이 강화될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