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직접 행정규제를 푸는데 앞장서겠다고 언명했을때 얼마나 행정
규제가 많았으면 완화하고 또 완화해도 끝이 없는가 하고 개탄한 언론인도
있다.

문민정부 이후 비로소 목청을 돋우기 시작한 경제단체들이 아직도 규제가
심해서 경제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푸념을 늘어놓고 최근에는 남덕우 전
총리까지 국제경쟁력을 가로막는 관료주의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60년대초 "무한정치"에 대한 공격을 시발점으로 70년대에 들어와 "민간
주도경제"로의 전환얘기가 나왔고 80년대초에는 행정개혁위원회,또 요즈음
에는 행정쇄신위원회,이렇게 따져보면 무엇인가 핵심문제를 돌려놓고 그때
그때 변죽만 올리다 마는 꼴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조 500년
행정사가 규제일변도였으니 그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천하에 존재하는 사물은 지배자의 것 아닌게 없다는 왕토왕신관념하에
모든 수재들이 경쟁시험(과거)을 통하여 특권층에 들어가서 백성을 뜯어
먹는 봉치세도,낮은 보수를 주면서 백성사랑하기를 자식같이 하라는
비현실적인 복무규정을 내세워 청렴한 관료속에 일부 부패관료가 끼여있을
뿐이라는 환상을 백성이 갖도록 위장한 절묘한 통치술,그리하여 권력의
뒤안길에서 부패한 부귀영화가 판을 칠수 있었던 과거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그 진상을 들이우고 있는 현실을 꿰뚫어 보지않고는 문제해결이 어렵다고
본다.

필자는 공직에 있었던 70년대말 국정지표를 모색하는 자리에 참석하여
정부가 시급히 손을 대야 할 분야로 세가지 무정권(anarchy zone)을 건의한
적이 있었다. 복잡하고 자유분방하게 확대되는 국제거래 금융세제와 뒤엉켜
장성한 대기업,산업화와 함께 양산된 노동자를 특별관리대상으로 잡고 철저
하게 대비해야 된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정부밖으로 나와 사기업에서 10여년을 지낸 오늘에 와서 보면 그
우국충정이 철없는 편견에 불과하고 오리려 무정권이 더 효율적이라는
역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정부의 규제발상은 대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이런 독선과 독단을 깔고
있고 또 이것들이 총체적으로 특권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손을
안대면 엉망이 되지 않겠는가,이만큼이라도 하고 있으니 이정도나마 되는게
아닌가,우리가 이 일을 안하면 누가 감히 하겠는가,실로 가상한 생각들
이지만 그 부작용과 비효과가 얼마나 크며 특권의식이 강한 관료들이
이러한 규제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일부러 생각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규제자의 머리위에 않아있는 약삭빠른 국민을
탓하기에 여념이 없다.

프랑스혁명때 프루동은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면서 무정
부주의를 제창한 바 있다. 그 영향을 받아 러시아에서는 바쿠닌이 독재와
싸우는 청년들을 열광시켰다.

영국에서는 파시즘에 맞서 라스키가 다원국가론을 주장하였다. 국가권력은
유일절대가 아니라 자치단체,경제단체,협동조합같은 여러단체의 한 형식일
뿐이라는 대범한 사상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특권의 와해이며 특권의 와해는 경잰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실증한 셈이다.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중앙집권정부가 존속되어온데 대하여는 여러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항상 외침의 우려가 있었으므로 강력한 정부가 필요
했다는 얘기도 있다. 일본에서 250년간 230개의 지방정부 다이묘가 경쟁할
수 있었던 것은 외침위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지고보면 공자 맹자의 지덕요도사상도 봉건왕들의 민심수습을 위한
지침서였기 때문에 이들 공권력간의 경쟁이 없었던 진시황이후에 와서는
한낱 관리들의 수신교과서로 전락하고 오히려 그 사상이 일본으로 건너와
다이묘들의 통치철학으로 개화된 감이 없지않다.

한편 강력한 특권층의 존재가 중앙정부를 지탱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거의 모든 인재들이 피나는 경쟁시험을 치르고나면 탈락한 수재
(secondelite)들은 실의에 빠져 향락으로 소일하거나 호구지책에 여념이
없었으니 부귀영화를 누리는 일급특권수재(first elite)들의 부정부패를
누가 감히 맞서 싸웠겠는가.

이런 점에서 귀족아니면 특권층이 될수 없었던 영국과 프랑스에서 평민
수재들이 민주주의를 성공시킨 것은 역사의 아이로니라고 할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외침의 위협여부가 논란의 대상이 되어있고 부정부패를
철저히 따져야할 인재들은 특권층의 아류가 되기 바쁘다. 언제 지방자치
훈련을 할 것이며,언제 관직이 하나의 기능을 갖는 평범한 직업으로 제자리
를 찾을 수 있겠는가.

클린턴미행정부는 출범직후 행정기능평가특위를 발족시켜 관료주의 잔재의
타파와 고객중시행정을 모색하고,비슷한 시기에 일본도 낭비행정이 장래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특별보고를 냈다한다. 미국은 후버 특위이래 또 한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으며 일급수재들의 대민봉사단이라는 일본의 관료제도는
마른 수건을 또 짜는 노력을 펴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에 앞서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부분은 바로 관료사회라는 것을 강조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