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급진 경제개혁은 결국 좌초하고마는 것인가하는 우려가 다시
팽배해지고있다.

예고르 가이다르 제1부총리의 16일자 사퇴의사발표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러시아 개혁을 지지해왔던 서방세계에도 당혹감을 안기는 것이다. 가이다르
제1부총리는 현행 급진개혁의 설계자라는 면외에도 지난 2년여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개혁의 기수로 평가받아 왔었다.

가이다르의 사퇴의사 표명에 이어 내각내 또다른 개혁파인 표도로프재무,
팜필로바 사회복지장관등도 사퇴할 뜻을 시사,옐친정부가 중도 내지 보수파
컬러의 인물들에 의해 장악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경우 러시아는 지난 2년
여의 개혁과정과는 크게 다른 방향으로의 선회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태가 여기에 이른 것은 우선 지난해 12월선거에서 개혁파가 의회의
다수를 점하는데 실패했기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있다.

여기에 정부내에서조차 이미 급진파와 중도온건파 각료들간의 갈등이
돌이킬 수없을 정도로 심각해져왔고 매번의 권력투쟁에서 개혁파들이
점차 소수파로 전락해왔다는 점도 간과할수없다.

현재 정부내 개혁파각료로는 가이다르를 정점으로 표도로프 재무,추바이스
사유화위원장(부총리급),팜필로바 사회복지장관등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이들의 직책이 요직이라는 강점은 있지만 총리 부총리 산업 노동등
여타 각료들은 이미 보수내지 중도세력에 의해 장악되어있다.

특히 총리인 체르노미르진은 산업계출신의 중도파 거두로 그동안
가격통제의 부활 보조금의 재개 사유화정책등에서 사사건건 가이다르
제1부총리와 격돌해왔었다. 체르노미르진은 소스코베트 제1부총리등
내각내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고있다.

옐친 대통령이 가이다르의 사퇴를 반려할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가이다르의 사퇴가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보수와 개혁을 줄타기했던
고르바초프의 전철을 밟는 수순이라는 지적도 벌써 제기되고있다.

옐친은 지난 91년 대통령 취임이후 개혁과와 보수파 각료들을 순차적으로
등용하는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해왔으나 지난 선거를 분기점으로 더이상
줄타기가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제기되고있다.

만일 이번 내각내 권력투쟁에서 개혁파가 침몰하는 상황이 된다면 러시아
경제개혁은 어떤 수순을 밟아갈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불꽃을 튀겨왔던
쟁점부분은 정책의 전반에 광범위하게 널려있다.

러시아 경제개혁은 사유화 가격자유화 민수화 국제화의 4개기둥으로
구축된 것이다. 국영기업 사유화는 특히 거대한 국유자산을 누가 장악
하는냐는 계급투쟁적 성격을 수반하면서 기존 노멘클라투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가이다르의 사퇴가 확정된다면 국영대기업들은 일단 사유화 목록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대신 국영기업들을 계열화하고 이를 서방의 재벌과
비슷한 형태로 개편하는 역의 선택이 채택될 가능성이있다. 이는 그동안
체르노미르진총리의 간판논리이기도 했다.

가격자유화 역시 그간 격렬한 논쟁포인트였다. 하스블라토프 전최고회의
의장과 루츠코이 전부통령이 엘친에 대항했을때 주된 공격점은 가격의
문제였다.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 삭감과 맞물려있는 가격자유화는 지난
92년 1월의 충격적인 자유화조치로서 막을 올렸었다.

가격 자유화조치는 지난 2년간 러시아의 텅빈 상점들에 다시 물건을
넘쳐나게했지만 동시에 대다수 국민들에게 빈곤을 강요하기도했다. 대중의
빈곤이냐 조속한 이행이냐는 논쟁이 지난 2년간 러시아 권력투쟁 정국의
키워드였던 셈이다.

결국 급진개혁의 깃발이 내려지면서 이모든 정책의 기본축은 상당한
조정이 있을 것이 확실하다. 보조금은 부분적으로 재개되고 사유화 속도는
재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정수준의 가격통제도 부활할 가능성이
커졌다. 무엇이 장기적으로 러시아에 적합한지는 물론 누구도 단언할
수없다.

클린턴 미대통령은 16일 가이다르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개혁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지난 13일 러시아 방문당시 이에대한 언질을
옐친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히고있다. 그러나 옐친이 가이다르가 빠진채
험난한 개혁과정을 얼마나 버텨낼지가 지금부터의 관심거리이다.

<정규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