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서가 묵살되고,오히려 친정으로 결정이 내려져 삼만의 동정군이
에도를 향해 출진했다는 소식과 함께 어전회의에서 사이고와 오쿠보가
요시노부에게는 셋푸쿠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연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도대체 쇼군께서는 왜 항상 말만 앞세울 뿐 실천을 하지 않느냐고,
탄원서에 적힌대로 지금이라도 당장 쇼군자리에서 물러나 말 그대로
공순의 길로 들어가라고 호된 충고를 하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요시노부는 그 서찰을 들고 곧바로 덴쇼인을 찾아갔다.

"대모님,이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왜,무슨일인데요?" "휴전이고
뭐고 다 틀렸지 뭡니까. 삼만의 대군이 에도를 향해 출진을 했답니다"
"어머나,그래요?" 덴쇼인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리고 사이고다카모리란 놈이 뭐라고 했는가 하면." "뭐라고 했는데요?"
"이 서찰을 읽어 보세요" 요시노부는 서찰을 덴쇼인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 다 읽고난 덴쇼인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이고상이 내 서한을 못 받아본 것 같군요. 받아보았으면 절대로 그런
태도로 나올 사람이 아닌데." "세이간인노미야의 탄원서는 제출했는데,
대모님의 서한은 안 전했을 턱이 없지요" "아무도 모르게 전하라고
했으니까,혹시 기회가 마땅치 않아서 며칠 늦어졌는지도 알수 없잖아요.
아마 그랬을거요. 사이고상은 그렇게 의리가 없는 사람은 아니라구요.
내가 잘 알아요" 요시노부는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듯이 말없이
눈만 끔벅거리면서 앉아 있었다.

"심부름을 간 후지코가 돌아와봐야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지만. 만약 내
서한을 받아보고도 사이고상이 그런 말을 했다면 난 가만히 안 있을
거라구요" "그럼 어떻게." "내가 직접 그를 만나서 따질거요. 그럴수가
있느냐고 말이오. 그리고 붙들고 사정을 하는거지요. 그러니까
쇼군께서는 너무 염려 말고,나를 믿고 있어요. 절대로 셋푸쿠는 안
시킬테니까" "대모님,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백골난망하겠습니다"
요시노부는 머리를 깊이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한결 심각한
표정으로, "이제 저는 쇼군 자리를 내놓고, 공순의 길로 들어갈
생각입니다"하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