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여건의 변동으로 경제기획원은 62년11월 계획의 전면적인
수정작업에 착수하였다. 보완계획은 정재석기획국장이 주도하여 64년2월에
확정발표하였다. 이는 64~66년의 3개년을 계획기간으로 하였으며 성장률을
당초의 7.1%에서 5%로,투자율을 22%에서 17%로 각각 축소조정하는등
여러부문의 내용을 수정하였다.

60년대 초반은 실로 변혁의 시기였다. 4.19에 이어 5.16이 일어나고
부정축재환수 기업인투옥등 기존 경제질서에 대한 대수술과 제재를
가하면서 한편으로는 의욕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기업인의 참여없이는 경제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을
풀어주었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여러가지 인센티브를 주면서 개발계획에의
참여를 유도하였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여러차례 되풀이 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80년대초 5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초기 한때 경제인을 비방하고 배척함으로써
경제를 위축시켰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고 돈가진 것을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기업인들이 사기를 잃고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있음을 우리는 보고있다.

한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기업이 발전해야 하며
기업의 발전은 창의적인 기업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경제정책은 기업인이 마음껏 활동하여 건전한 기업을 발전시킬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며 기업인이 돈버는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경제발전은 이룩할수 없다.

이러한 일들이 있을때마다 경제가 정체 또는 후퇴하는 것을 보며 역사의
교훈을 살리지 못하고 우를 되풀이함을 아타깝게 생각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의 교훈을 살리지 못하는 민족은 발전할수
없다고 하였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중 하나라고 하는 한국이 21세기초에
선진국대열에 들어가느냐 아니면 미꾸라지로 전락해 버리느냐 하는 중대한
전환기에 우리는 서있다. 한때 식자층에서 민주화만되면 경제발전은
저절로 된다고 주장한 사람이 많이 있었다.

민주화시대에 우리경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잘 조화시킬수 있는 지혜가 그 어느때보다도 필요한것 같다.

5.16직후 부흥부가 건설부로 바뀌고 불과 두달후에 경제기획원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산업개발위원회는 해체되었다. 그 당시 부흥부
기구개편안을 작성했던 정재석씨(당시 부흥부 조사과장)에 의하면 첫째안은
"경제기획원"이고 둘째안은 "개발부"로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물론
중앙의 강력한 개발센터로서 부흥부의 기획과 조정기능에다 재무부의
예산기능과 내무부의 통계기능을 흡수,일원화하고 각부처간의 정책을
조정하는 경제기획원의 설립이 필요했다. 그러나 대폭적인 조직개편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부흥부만을 개발부로 확대 개편할 것을 건의 하였다.

혁명의원회는 둘째안인 개발부를 채택하되 명칭만 건설부로 하고 첫째안인
경제기획원으로의 개편은 혁명기반이 어느정도 잡히게 될때(약3개월저아도
걸릴것으로 보았다고 함)로 미루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61년5월26일 최고회의령 제14호로 부흥부가 건설부로 개편되고
그로부터 두달후인 7월22일 법률제660호로 건설부가 폐지되고 경제기획원이
신설되었는데 이때 재무부의 예산국과 내무부의 통계국이 흡수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