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회관 건립에 대한 얘기를 조금더 했으면 한다.

대지를 매입하고 설계를 마친후 건축허가를 받느라고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호담당이사가 쫓아 올라왔다.

"회장님,큰일 났습니다. 회관을 1년안에 착공하지 않으면 공한지세를
물어야 하는데 그것이 대략 5억원쯤 됩니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거 야단났구나 싶어서 무슨 대책이 없나하고
상의해 보았더니 유예기간을 2년으로 연기 받을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래서 당시 내무부장관인 주영복씨를 찾아갔다.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고
현행 1년으로 되어 있는 유예기간을 2년으로 연장해줄수 있는 방법을
세워달라고 호소했다. 사실 이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게 하자면
시행령을 고쳐야 하는데 우선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법제처에 회부되는
과정을 밟아야 했다. 그런데도 주영복내무부장관은 "그렇게 해봅시다"라고
선선히 응낙해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남의 속타는 줄도 모르고 그 안건의 심의는 지지부진이었다. 시일은 자꾸
흐르고 구청에서는 고지서를 발부해야 한다고 보챘다. 다시 장관에게
부탁했더니 장관이 영등포 구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개정 시행령의 통지를
빠른 시일내에 해줄터이니 고지서 발부를 보류해놓으라고 했다고한다.
이렇게 해서 공한지세 5억원을 가까스로 면제받게 되었다.

원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서 시작하였으니 자금 문제는 항상 우리를
짓누르는 큰 걱정거리였다. 더구나 애당초 계획을 세울때 정부에서
건설비의 반 정도는 지원을 받을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해놓았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의 부총리 김준성씨(현(주)대우회장)를
찾아갔다. 그는 전에 니트공업협동조합 이사장도 지낸 일이 있고 해서
친정집을 짓는데 도와주셔야겠다고 사정을 했다. 부총리는 어렵겠다는
말을 거듭하면서 예산실장에게도 잘 부탁해보라고 했다. 예산실장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녔지만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탐문한 바에 의하면
실장의 문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고문집을 보관할 서고를 짓고 큰 행사를
한다기에 대구까지 내려가 문씨집안 행사에 참석,큰 절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 다음 해에 14억원의 정부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그
후 매년 부탁과 사정을 거듭하여 5~6년간에 걸쳐서 보조받은 액수가
89억원이나 되었다.

건축설계도 마치고 허가도 나왔으니 건물을 지어야겠는데 난감한 문제가
또 있었다. 앞서도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단체는 B급
건물 밖에 지을 수 없으며 그 당시 평당 건축비 1백17만원 이하의 건물을
지어야 한다. 그런데 설계는 A급 건물로 해놓았으니 이것은 평당
1백80만원이 드는 것이다. 공개입찰을 하자면 1백80만원에서 10%나
20%감한다 하여도 1백50만~1백60만원선이 되는데 그럴만한 돈도 없었거니와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면 규정에 어긋나서 감사의 대상이 될
판이었다.
그래서 현대그룹 정주영회장을 찾아갔다. 정회장은 평소에 나만 보면
"나도 40년전에는 중소기업자였으니 유회장이 잘 좀 봐주시오"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곤 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정회장이 나보고 잘
봐달라고 할 이유는 없었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정회장님,나만 보면 잘 봐달라고 하시는데 나한번 잘 봐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번에 중앙회 회관을 짓게 되었는데 우리는 평당 1백20만원이하짜리
밖에 지을수 없습니다. 상공회의소 건물은 저렇게 잘 지었는데 같은
경제단체로서 중소기업 회관만 초라하게 짓는다면 남들은 속도 모르고
형편없이 지어놓았다고 욕할것 아닙니까. 그러니 정회장께서 잘
지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정회장은 "그래,질은 상공회의소와 같게
짓되 돈은 1백20만원만 받으란 이야기 아니오"하기에 "그렇습니다"했더니
"좋아,해줄께"하는것이 아닌가. 나는 정말 놀랐다. 설마하니
이럴수가,50억원이나 싸게 해준다니. 내친김에 한술 더 떴다.
"정회장님,설계대로(설계는 평당 1백80만원)지어주시면 전국의
중소기업자가 오래오래 감사할 것이고 돈대로 지어주시면 두고두고
정회장님을 욕할 것인데 설계대로 지어주시겠습니까"했다. "이봐요
해준다는데 웬 말이 많아"하기에 "예 감사합니다"하고 큰절을 하고 나왔다.

이렇게 해서 공개입찰의 형식을 갖추었다. 평당 1백20만원보다 5만원이
싼 내정가격 평당 1백15만원으로 낙찰시켰다. 그 주변의 우리와 같은
수준의 빌딩들이 평당 2백만원정도 들었다고 하니 우리는 그 절반가격으로
지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