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보가 기자가 된 것은 행운이었다.

그가 취직자리 구하려고 P읍에 왔다가 "주간 P저널" 발행인이자
편집국장인 오국장 눈에 띄어 전격 발탁된 것이다. 고졸이 학력의 전부인
그에게 신문기자라는게 어딘지 과분한 것 같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오국장은 프라이드가 대단히 센 사람이었다.

중앙 일간지 기자였다가 12.12사태후 신군부에 의해 잘린 것을 늘
자랑했으며 멀지않아 중앙지에서 자기를 모시러 올 것이라고 큰소리쳐댔다.
주민 5만이 고작인데도 P저널을 10만부나 찍고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실제 발행부수는 절대비밀로 오국장과 인쇄소 주인만이 알고 있었다)
오국장은 공무원이나 지역유지를 대할때,상대의 지위나 나이를 가리지
않고 반말조로 이야기를 했으며 이따금 "수틀리면 확 긁어버리겠어"하고
협박조로 내뱉곤 했다. 그러면 어딘지 구린데가 있는듯 경찰서장이나
군수같은 기관장들이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갖은 아첨을 다했다. 거기에다
그는 술고래였고,술주사까지 심해 그가 술마시는 날이면 읍내가 온통
떠들썩했다.

창보가 입사해서 만든 첫 신문이 나왔다.

1면톱기사는 "아파치,물감 푼 가짜양주 팔다"였다. "아파치"는 읍내에서
가장 큰 술집이었는데 며칠전 오국장이 그집과 경쟁관계에 있는 술집
"오륙도"에서 공짜술을 얻어마시고 갈겨쓴 기사였다. 아침이 되자
아니나다를까,아파치에서 동원한 어깨들이 사무실에 들이닥쳐 책상을 마구
뒤엎고는 "오국장 어디갔어. 다 죽여버린다"면서 애꿎은 창보 멱살을
쥐고는 땅바닥에 패대기 쳐버렸다. 오국장은 일찌감치 줄행랑을 쳤다가
어깨들이 제풀에 꺾여 사라진 뒤에서야 나타나서는,계란으로 퍼렇게 멍든
눈주위를 문지르고 있는 창보에게 "이봐 때로는 36계도 필요하다네"하면서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창보는 기자운이 퍽 좋은 사람이었다. 입사 10일만에 특종이 될만한
사건취재에 나서게 됐던 것이다. 마감날"댐이 붕괴될것 같다"는 독자
전화가 걸려왔다. 연 이틀째 억수같은 폭우로 마을이 온통 물천지였다.
댐이 붕괴되면 댐 바로 아래에 위치한 P읍은 끝장이었다. 오국장은 풋내기
수습기자 창보를 현장에 보내면서 댐에 도착하는대로 6하원칙에 맞춰
간결명료하게 기사를 송고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그가 떠난지 벌써
다섯시간.

마감시간이 넘었는데도 통 오리무중이었다. 자정이 지나서야
텔레타이프가 요란하게 기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부터
하느님은 우리 P읍을 심판하고 계시다"
첫 문장은 퍽 시적이었다. 그러나 이어서 들어오는 문장들은
신문사용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소설이었다. 불과 2~3면에 인쇄될,원고지
20~30장 정도면 족할 기사가 벌써 수백장 분량도 넘게 들어왔고,또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사실에 관한 기사는 극단적이랄 만큼
적었다. 거기에다 내용은 장황했고 여류수필가의 수필처럼 감성적이었다.
따라서 도저히 신문기자로는 써먹을수 없었던 것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오국장,창보에게 취재지시를 내리기 위해
텔레타이프를 두드렸다. 그러나 아직 창보가 햇병아리 기자인점을
참작한듯 지시내용은 퍽 유머러스했다.

지시사항은 무엇이었을까.

홍수는 그만,곧 하느님과 인터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