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의 왁사해치 대평원에 우주와 물질의 신비를 규명하기 위한
세기의 과학 대역사가 펼쳐지고 있다. 50m 깊이의 지하에 둘레가 86km
에 달하는 거대한 터널 링이 들어서는 "초전도 입자 초가속장치",통칭
SSC(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프로젝트의 현장이다. 이 시대
엔지니어링의 개가로 불리며 완공단계에 들어선 영국 도버해협의 해저
철도터널(50km)보다 37km가 더 길다. 이 터널속에 길이가 17m되는 초전도
자석1만여개가 설치되고 액체 헬륨으로 강을 만들어 터널속 온도는 섭씨
영하 233도까지 냉각시킨다. 사업비는 99년 완공기준으로
84억달러,예산배정이 늦어져 완공이 5년 지연되면 100억달러로 불어난다.

물질의 기원은 무엇이며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은 아직 없다. 뉴턴이 발견한 중력의 법칙은
과학자들에게 복잡한 자연현상 뒤에는 뭔가 통일되고 간단한 수학적 질서가
있으리라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뭔가 인간이 헤아릴수 없는 이 오묘한
질서는 "조물주의 조화" 또는 "신의 마음"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분자물리학의 발달로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와 그 하부구조인 미립자의
세계가 차츰 드러나고 입자 서로간에 밀고 당기는 힘과 중력등 자연의 힘을
한데 묶어 통일된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대담한 시도가 등장했다.

"신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물리학의 "성배"를 찾아 나선 "최종리론의
꿈"이 그것이다. 터널속에서 초가속기로 양자를 가속시켜 초고속으로
충돌시키면 여기서 새로운 미립자들이 쏟아지고 이들간의 상호작용을
분석,물질의 기원과 우주의 생성에 관한 신비를 벗겨내는 작업이다.
지상에서 하늘로 향하는 성서속의 "바벨의 탑"처럼 "신의 마음"으로 향하는
현대판 "바벨의 터널"이라고나 할까.

경제사정이 어렵고 경쟁력강화에도 당장 도움이 안되는 이 기초과학연구에
엄청난 돈을 투입해야 할 것인가. 관련학계는 양자 빔과 가속기 기술이
에이즈 바이러스와 암세포 구조를 규명하고 반도체 제조등 첨단 전자산업에
원용되는 부수효과도 상당하다며 돈줄을 쥔 의회쪽을 설득시키려
안간힘이다. 일본과 한국의 참여방안이 꽤 깊이 있게 논의됐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1492년 이사벨라 스페인여왕은 망설임과 주저끝에
콜럼버스에 배 세 척을 내주는 용단을 내려 아메리카대륙의 발견으로
이끌었다. SSC의 앞날 역시 그 "이사벨라적 용단"에 달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