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난지 40여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경제성장률이나
산업화율등에서 남한보다 크게 뒤져있다. 농.공업간및 경.중공업간
불균형심화는 북한의 균형성장을 저해했고 경제자원을 비생산적인 군사비에
충당함으로써 경제건설과 주체사상의 실패를 초래했다. 전쟁이전에 비해
남북한 경제상황이 역전된 이유와 북한경제의 장래를 살펴본다.
북한의 기형적 산업구조의 원인은 중공업우선정책에서 비롯됐다.
6.25이후 북한정권은 1차5개년계획(1957 61)을 실시해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다.
기술혁신에 역점을 둔 1차7개년계획(1961 67)은 이른바 "경제자원의
국방및 군현대화를 위한 재배분"때문에 70년까지 3년연장돼 시행됐다.
중국으로부터 1억달러가 넘는 투자재원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
7개년계획은 실패했다. 특히 중공업에 대한 과도한 개발투자때문에 1963년
평양과 모스크바간에 마찰이 빚어졌다.
북한은 6개년계획(1971 76)기간동안 서구자본 기술 플랜트 장비등의
수입에 치중했다. 그러나 유가파동 광물가격급락등 세계적인 불황으로
1974년 7억달러가 넘는 외채상환이 어렵게됐고 81년엔 30억달러,90년에는
외채가 78억6천만달러에 이르게 다. 1978년 2차7개년계획(1978 84)은
경제의 "주체화 과학화 현대화"에 역점을 두고 운송체계와 수출증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노후화된 산업기계,뒤떨어진 기술,엄청난
군사비,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나는 외채,무역적자문제등으로 당초 목표는
2년 연장후 달성됐다. 1986년 발표된 3차7개년계획(1987 93)은
철강생산목표를 1천5백만t에서 1천만t으로 축소함으로써 중공업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국방비지출증가는 북한경제에 커다란 부담을 주었다. 6.25동란후
10년간 북한정권은 국가예산의 70%를 인민경제의 기본건설 투자에,15 20%를
사회문화사업비에,나머지 10%를 국방비와 행정비에 각각 지출했다. 그러나
정부지출의 5%내외에 불과하던 국방비비중이 67년이후 30%이상선으로
증가돼 71년까지 유지됐고 지금은 15 17%수준에이른것으로 추계된다.
결과적으로 인민경제에의 투자는 50%를 밑돌게 됐다. 70%에서
50%수준으로의 인민경제투자축소가 북한경제에 해로운 영향을 끼쳤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의 대외무역은 아주 미미했다. 북한의 수입은 대부분 기계류와
기타생산설비이다. 수입의 70%이상이 "생산적 자본재"였고 나머지는
소비재와 중간재이다. 원료와 기초금속제품을 65%정도 수출하고
공산품수출은 35%에 불과하다. 50년대에는 주로 소련 중국과,나중에는
동독 루마니아 폴란드 불가리아 체코 알바니아 몽골등과 무역을 했으나
전쟁후 무역회사들은 점차 일본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서독 호주등 서방국가의 무역회사와 협정을 맺었다. 그래서 60년대후반
북한은 40여개국과 무역을 해왔다. 71년 북한은 무역의 85%는
공산권국가와,15%는 자본주의국가와 거래했다. 74년에는 48.8%만
공산권국가와 무역을 하고 자본주의국가와의 거래가 51.2%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해외시장에서의 판매능력부족 자본부족 공산품빈약
낮은생산기술등으로 북한의 무역은 여전히 침체돼있다. 지난 10년간
자유세계와의 교역은 상당히 성장했다. 그럼에도 전체교역량은 남한의
6%에 불과할 정도로 빈약하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농업생산도 1차7개년계획이후 감소추세에 들어섰다.
또 북한의 경제계획기관도 경직화되고 원시적이며 경제적 통계적 산업조사
개발등의 미진으로 계획기술 생산기술 품질관리 공업경영등이 향상되지
못했다.
6.25동란후 북한은 연료와 원재료에 대한 수요증가로 만성적인
무역수지적자를 기록했다.
6개년계획(1971 76 77)기간동안의 연평균 무역적자는 3억4천만달러에
이르렀는데 그원인은 세계시장에서의 가격변동을 제대로 예측치 못한
중대한 계산착오에도 큰원인이 있었다.
또한 6개년계획을 로동당창립30주년을 기념하는 75년10월까지 1년앞당겨
달성하기위해 72년이후 유럽과 일본으로부터 기계 플랜트 장비등 엄청난
수입을 했었다. 그런데 북한은 이러한 수입대금을 당초 금속가격이
세계시장에서 최고시세에 있을때 계획한 여러가지 기초.비철금속의 수출로
결제할 예정이었다. 이러한 북한의 예측은 74 75년사이 금속및 비철금속의
세계적불황으로 수출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74년
7억2천5백만달러의 대외부채를 안게됐다. 로동당은 81 82년 사이의
불황때도 같은 실수를 저질러 외채는 30억달러를 넘어서게 됐다.
85년부터 90년까지 북한은 연평균 10억달러가 넘는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북한은 84년 합영법제정이래 외국투자유치에 나서는등 경제재건의
돌파구를 찾기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 소련의 붕괴로 상징되는 사회주의권의 변혁움직임은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킬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더욱이 작년 북한의 유엔가입과
올해 핵안전협정체결과 같은 국제무대에서의 가시적 변화의 시작,남북한간
교류의 급속한 진전등 북한의 경제난타개를 위한 다양한 모색등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