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 이론, 유일 당의 공산주의 자체내에서 반대세력이 나온 것은
필연적이라 봅니다."
순수 공산주의 신봉자이면서도 김일성 유일체제에 환멸을 느껴 지난
62년 불가리아 유학중 망명한 이상종(55. 소피아시 거주), 최동성(56.
스타라자시 화학비료공 장교대장), 최동준씨(55. 스타라자시 수도설계소
부소장) 등 북한동포 3명이 한민족 체전에 참가하기 위해 10일
우리나라에 왔다.
망명후 약 30년동안 북한의 가족과 편지 한장 주고 받지못한채
무국적자로 지내왔다는 이들은 "실패로 끝난 소련 쿠데타로
마르크스주의는 이제 도덕적, 사회적, 역사적 가치가 크게 손상돼 복구될
가능성이 희박한것 같다"며 "1917년 볼셰비키혁명의 물결이 휩쓸던
동구에 이제 공산주의를 청산하는 새로운 혁명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원칙적으로 전제국가를 만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15년이 걸렸습니다."
혁명사업을 위해 결혼 등 개인적 행복까지 포기하기도 했었다는
최동성씨의 이 말처럼 이들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듯하다.
최씨 등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56년 북한의 국비유학생으로 불가리아의
소피아 종합대학에 유학을 온후 김일성이 양풍반대운동을 편다며 반대파를
숙청하고 개인 독재체제를 구축하자 이에 환멸을 느끼고 불가리아에
정치적 망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후 62년 7월28일 북한유학생 소환령이 내려지자 같은 동포
유학생이었던 이장직씨(55. 삼성물산 불가리아지사장)와 함께 불가리아,
소련, 체코, 폴란드공산당에 김일성 독재체제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고
불가리아에 망명을 요청했다.
이들은 그 후 소피아시 부근 비토샤 산에서 보름동안 숨어지내다
불가리아정부로부터 망명허용을 받고 산을 내려왔으나 북한
대사관직원들에게 붙들렸다.
"북한 대사관 4층에 갇혀 나무통 만드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꼼짝없이
죽는줄 알았습니다."
이들은 당시의 급박했던 감금생활을 회상하며 북한으로 송환되기
직전에 두 이씨는 한밤에 대사관을 몰래 탈출했고 두 최씨는 비행장에서
여권을 찢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그후 불가리아와 북한과의 외교관계 등 정치적인 이유로 이씨 등은
국적을 취득 못하다 금년초 두 최씨만 국적을 얻게 됐다.
최동성씨는 동구에서도 북한을 <조직된 동물사회>로 평가, 북한에서 온
것을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불가리아국적을 취득하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최씨는 제루 제레프 불가리아대통령과는 유학시절 하숙방을 같이
쓰고 정치이념도 같아 지금까지 막역한 친구사이로 지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동준씨는 "한국을 방문한다는 생각에 이틀동안 밤잠을
설쳤다"며 "그토록 오고 싶었던 한국을 대하니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