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지역의료 회복 위해 의대증원 필요"…쐐기 박은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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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손 들어준 서울고법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 배상원 최다은)가 16일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각하·기각 결정을 내림에 따라 의대 증원 문제가 중대 고비를 넘겼다. 재판부는 신청인들이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린 1심 판단과 달리 의대생만큼은 소송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의대 증원을 중단할 시 필수의료·지역의료 회복 등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봤다. 이에 집행정지를 위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보고 최종적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법리 해석 들여다보니
교수·전공의 '원고 부적격' 각하
의대교육 부실화 부를지라도
증원 필요성 부정할 수 없어
의대생 학습권 침해 최소화 필요
증원 규모 1469명으로 정해질 듯
○“집행정지 시 공공복리에 중대 영향”
서울고법 행정7부는 의대 교수, 전공의, 수험생의 신청은 1심과 같이 원고 부적격을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지만 의대 재학생들은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1심보다 원고 적격 대상을 폭넓게 해석해 사건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재판부는 “헌법 등 관련 법령상 의대생의 학습권은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에 해당한다”며 “의대생은 의대 정원 증원 처분으로 인해 교육시설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행정소송법 23조는 집행정지 요건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으면서 공공의 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을 경우 등으로 규정한다. 재판부는 의대생의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의대 교육은 실습 등으로 상당한 인적·물적 설비가 필요해 일반적인 대학교육과 다른 특수성이 있다”며 “의대생들이 과다하게 증원돼 의대교육이 부실화되고 파행을 겪을 경우 의대생들이 제대로 된 의학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집행정지가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크다고 보고 기각 결정했다. 재판부는 “우리나라는 필요한 곳에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 필수의료·지역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적어도 필수의료·지역의료의 회복·개선을 위한 전제로 의대 정원을 증원할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이어 “이 사건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의대생의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옹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대 정원을 2025년부터 매년 2000명씩 증원할 경우 의대생들의 학습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여지도 없지 않다”며 “향후 의대 정원 숫자를 구체적으로 정할 때 매년 대학 측 의견을 존중해 의대생들의 학습권 침해가 최소화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27년 만의 의대 정원 현실화
법원 판결로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는 각 대학이 지난 4월 말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한 최대 1469명(차의과대학 제외)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다. 대교협은 항고심 판결 이후로 미룬 대입전형심의위원회를 바로 개최할 계획이다. 대교협이 대학별 정원을 심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증원 규모는 이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대교협은 이달 말까지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 계획을 발표해 확정한다. 이후 대학들이 다음달 초 모집 요강을 공고하면 내년 의대 증원을 되돌릴 방안은 현실적으로 없어진다.다만 정부 계획대로 2026학년도부터 2000명씩 추가 모집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각 대학은 4월 말까지 대교협에 제출한 2026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에서 증원분 2000명을 100% 반영한 계획을 제출했다. 하지만 의·정 간 대화를 통해 조정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민경진/강영연/이혜인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