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년 박범신, 산문집 2권 펴내…"투쟁심 가득찬 연애였다"

'두근거리는 고요'·'순례'
"소설 쓰기는 나에게 늘 홀림과 추락이 상시적으로 터져 나오는 투쟁심 가득 찬 연애와 같았다. "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소설가 박범신(77)은 지난 반세기를 파란만장한 '연애'에 빗댔다.

그는 산문집 '두근거리는 고요'와 '순례'(이상 파람북)를 함께 펴내며 "돌아보면 단 한 번의 미친 연애로 시종해 온 것 같은 세월이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회고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나마스테', '고산자', '은교' 등을 펴내며 '영원한 청년 작가'로 불렸다. 1993년 절필을 선언했다가 1996년 '흰 소가 끄는 수레'로 복귀하기도 했다.

'두근거리는 고요'는 여러 매체에 발표한 비교적 최근 글을 묶었다.

고향인 충남 논산의 글방 '와초재'에서의 소소한 일상부터 끊임없이 염원한 문학과 부조리한 세상 이야기를 아울렀다. 그는 작가는 두 개의 방을 오간다며 "하나의 방은 단독자로 존재하는 '밀실'이요, 두 번째 방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광장'"이라고 이야기했다.

1993년 절필은 피폐해지면서도 쓰던 "욕망'과 유신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는 "닫힌 시대와의 불화"가 불러온 결과였다고 돌아봤다.

반세기 수십권을 썼지만 여전히 문학에 대한 사랑과 갈망은 줄지 않는다고 했다. "머리가 희어지는 속도보다 가슴이 더 빠르게 붉어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까.

"
'순례'는 오래전 출간한 히말라야와 카일라스 순례기를 압축해 담고 최근에 집필한 산티아고 순례기와 폐암일기를 묶었다.

그는 "순례는 육체의 고통을 바쳐 영혼의 안식을 얻고자 하는 헌신"이라며 "길 위에 올라선 채 길이 흐르는 대로 나를 가만히 맡겨둘 수 있어야 참 순례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 책에서 최근 몇 년간 긴 소설을 쓰지 못한 계기와 그로 인한 고통도 고백했다.

지난 2016년 불거진 성추문을 언급한 대목이다.

당시 SNS에 그의 발언 등에 대한 목격담이 올라왔고, 피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불쾌한 일은 없었다"고 공개 반박하며 논란은 일단락 됐다.

그는 억울한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자아성찰의 계기로 삼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그런데도 "수십 년의 문학적 성과가 통째 생매장된다고 느낄 때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찾아왔고 '은교'가 본질적인 발화지점일 수 있겠단 상상이 "소설 쓰기에 대한 자학적 환멸을 강력히 불러왔다"고 털어놓았다.

작가로서의 자신과 다시 만나고자 그는 2019년 홀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이 길에서 돌아온 뒤 폐암 진단을 받아 병고의 여정을 폐암일기에 담았다. 폐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그는 "전혀 다른 순례가 시작되겠구나 하고 생각한 것 같다"며 "죽든 살든, 어차피 한 세상 사는 건 당연히 하나의 순례니까"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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