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그려준 동물들의 눈망울은 하나 같이 사랑스러워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미디어아트 기획전 '예측 (불)가능한 세계'
언메이크랩의 ‘가정 동물 신드롬’. 사슴뿐 아니라 늑대 같은 맹수도 인간이 호의를 가질 법한 커다란 눈을 하고 있다. /유승목 기자
한국 동시대미술의 최전선을 비추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과천관·덕수궁관·청주관 네 곳의 분원 체제로 운영된다. 지난해 이곳을 찾아 전시를 즐긴 방문객만 320만명이 넘는다. 이 중 청주관을 찾은 인원은 약 25만 명. 숫자만 보면 총방문객의 8%에 불과한 꼴찌지만, 유일한 비수도권 분관이란 점을 고려하면 의미가 남달라진다. 수도권 쏠림으로 메말라가는 지방 문화 인프라 부족을 해소하는 데 적잖은 기여를 해서다. 미술관에서도 “청주뿐 아니라 주변 지역에서도 두루 찾으며 중부권 현대미술 메카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내놓을 정도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관이 아닌 청주관에서 처음으로 ‘미디어아트’를 주제로 한 전시 ‘예측 (불)가능한 세계’를 과감하게 선보인 이유다. 낯선 표현과 난해한 내용으로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장르지만,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 동시대 예술가들의 단상을 함께 공유할 만큼 중부권 미술 애호가들의 수준이 무르익었단 판단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미디어아트는 첨단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이란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면서 “중부권을 대표하는 청주관에서 미디어아트를 선보이게 돼 뜻깊다”고 했다.
히토 슈타이얼, 이것은 미래다, 2019, 비디오 설치, 환경, 울산시립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는 세계적 화두인 AI에 대한 예술적 고찰로 요약된다. 최근 미술계에서도 AI가 고흐나 렘브란트의 천부적 재능을 능가할 걸작을 내놓을 수 있을지, 결국 예술가의 창작력마저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함께 고민해보자는 제안이다. ‘인공’을 넘어 ‘생성’의 기능까지 더해지며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서고 있는 AI에 대한 공포 혹은 희망이 비단 예술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참여작가들의 면면이 꽤 익숙한 터라 믿고 전시장에 발을 들여볼 만 하다.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는 히토 슈타이얼이 대표적이다. 2년 전 서울관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 ‘데이터의 바다’로 작품을 선보인 적 있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안 쳉 역시 2022년 리움에서, 최근엔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함께 전시에 참여한 언메이크랩, 김아영, 추수, 슬릿스코프, 제이크 엘위스, 트레버 페글렌 역시 꾸준하게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언메이크랩의 ‘가정 동물 신드롬’. 사슴뿐 아니라 늑대 같은 맹수도 인간이 호의를 가질 법한 커다란 눈을 하고 있다. /유승목 기자전시는 4개 섹션으로 이뤄졌다. 먼저 ‘미래와 비미래’에선 흔히 떠올리는 ‘AI 기술=미래’라는 환상을 깨뜨린다.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 ‘이것이 미래다’는 예측 알고리즘에 기대 미래를 추측하면서도 정작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AI의 우둔한 면모를 부각시킨다.

언메이크랩의 ‘가정 동물 신드롬’은 AI 생성 신경망으로 추출한 동물 이미지를 담았는데, 종(種)에 관계없이 모든 동물이 인간이 사랑에 빠질 법한 ‘반려동물의 눈망울’을 하고 있어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고 왜곡돼 있는지를 고발하는 셈이다.

이 밖에도 ‘생성과 비생성’, ‘진화와 공진화’, ‘궤도 댄스와 두 개의 눈’ 등의 섹션에서 AI에 대한 색다른 관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안 쳉의 영상 작품인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의 경우 인생의 최적 경로를 알려주는 AI인 BOB가 제시한 방향대로 최선을 다하는 찰리스의 삶을 보여준다. 작품은 ‘더 나은 선택’을 도와주는 AI의 의식대로 살아가는 게 과연 진보이고, 나아가 진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표로 볼 수 있다.
이안쳉,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 2021-2022, 스토리와 시뮬레이션, 사운드, 50분, 글래드스톤 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앞으로 20년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AI가 인간으로부터 통제권을 빼앗을 확률이 50%”라고 밝힌 한 석학의 경고가 이번 전시의 시발점이다. AI에 정복당할 50%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위험이 일어나지 않을 50%의 불가능을 얘기하는 자리인 것이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AI에 대한 우리 태도와 사유를 점검하고, 새로운 상상 위에서 기술과의 공생을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
추수, 달리의 에이미 #18, 2024, 유리 네온사인, 아크릴 상자에 UV인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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