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간 특허 출원 1위 IBM, 클라우드 시장 재편 나선다

올해 창립 110년 맞은 IBM
업계에 '싱크' DNA 전파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 공략
시계, 정육점 저울, 계산기, 커피 분쇄기. 1911년 창업한 IBM(종목코드 IBM)의 초기 주력 상품들이다. 3년 뒤인 1914년 토머스 왓슨이 총책임자로 합류하면서 IBM의 대표 상품은 전기 타자기와 사무용 기기로 바뀌었다. 이후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다시 한번 변신에 성공했다.

왓슨은 IBM의 초기 역사를 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인재 확보에 누구보다 집중했다. 사훈은 ‘싱크(Think·생각하다)’. 모든 직원이 스스로 생각해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도록 했다. ‘독서하라, 경청하라, 토론하라, 관찰하라, 생각하라.’ 다섯 개 항목은 IBM의 핵심 원칙이다. 왓슨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연구 중심 기업으로 바뀌고 직원들이 생각하기 시작하자 기업도 함께 성장했다. “기업의 성패는 직원들의 재능과 열정을 끌어내는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이 격언은 왓슨이 남긴 가장 큰 자산이다. IBM의 ‘싱크’ 정신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등으로 이어져 미국 IT 기업의 혁신 기반이 됐다.

IBM은 올해로 창립 110년을 맞았다. 경쟁 업체가 늘면서 IBM의 지위는 흔들리고 있다. 한때 미국 1위 IT 기업이었던 IBM은 애플 아마존 구글 등에 밀려 10위권 지위도 위태로운 상태다. 하지만 왓슨이 만든 싱크 정신은 여전히 IBM을 지탱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등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인공지능(AI) 서비스 왓슨, 클라우드 플랫폼 블루믹스 등을 잇따라 내놨다. 2019년 레드햇을 인수하며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IBM의 미래가 여전히 밝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28년째 세계 1위 특허 보유 기업


IBM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솔루션 기업이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다. 1911년 찰스 플린트가 세운 IBM(당시 사명 CTR)은 지난 110년 동안 세계 사무용 소프트웨어 시장을 지키며 직원만 34만5900명인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IBM 사업부는 클라우드 컴퓨팅, 글로벌 비즈니스 서비스, 글로벌 테크놀로지 서비스, 시스템, 글로벌 파이낸싱 등으로 이뤄져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부에선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솔루션 등을 판매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서비스 사업부는 기업 컨설팅과 글로벌 프로세스 서비스 등을 담당한다. 글로벌 테크놀로지 서비스 사업부는 IT 인프라와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스템 부문에서 집중하는 것은 기업용 AI 워크로드 솔루션이다. IBM은 레드햇을 토대로 클라우드 시장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IBM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기업이다. 지난해 9130개 특허를 취득했다. 1993년 이후 28년째 부동의 1위다. IBM 직원들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놓고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열린 태도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IBM의 기업 문화다. CTR을 IBM으로 바꾼 왓슨의 도전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1952년엔 상업용 컴퓨터의 시초인 IBM 701을 출시했다. 프로그래밍 언어인 포트란도 1957년 개발했다.

2000년대 이후 변화 뒤처져


컴퓨터와 운영체제(OS)를 개발하면서 1980년대까지 독주를 이어온 IBM은 ‘우주 전쟁’에도 뛰어들었다. 1969년 아폴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당시 IBM은 컴퓨터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고 MS가 도스, 윈도 등으로 소프트웨어 표준을 장악하면서 주류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경쟁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밀린 IBM은 1991년 첫 손실을 냈다. 1993년 창업 이래 가장 많은 80억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이후 외부 인사였던 루 거스너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 뒤 소프트웨어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거스너는 기업들의 요구에 집중했다. 하드웨어 회사였던 IBM을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개인용 컴퓨터 사업부는 중국계 레노버에 매각했다. 1993년 30%에도 미치지 못했던 소프트웨어 매출 비중은 올해 80%까지 증가했다.

IBM의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 OS/2는 결국 실패작이 됐다. 하지만 IBM은 자신들의 역사에서 이를 지우지 않았다. 실패가 모여 성공 제품을 만드는 힘이 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업 솔루션 기업으로 체질을 바꿨지만 IBM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0년대 들어선 빠른 시장 변화 속도를 제때 따라가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1년 858억7000만달러였던 매출은 2020년 735억7000만달러로 감소했다. 2011년 1069억2000만달러를 기록한 뒤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기업가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01년 1월 1952억달러였던 시가총액은 1200억달러 수준으로 감소했다. 2012년 2417억달러까지 몸집을 불렸던 것을 고려하면 감소세가 더 두드러진다. 2018년엔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가 IBM 주식 처분을 공표하며 상처를 남겼다. 당시 애플 주식 비율을 늘렸다고 밝힌 버핏은 ‘IBM 주식을 보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해 IBM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했다. 버핏은 경쟁이 치열한 클라우드 시장에서 IBM이 우위를 점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세계 첫 의료용 AI 상용화 모델로 기대를 모았던 왓슨헬스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IBM은 2015년 4월 의료진을 도와 암 심장질환 등을 예측 진단하는 왓슨헬스를 내놨다. 왓슨의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분석하는 머지헬스케어, 환자 상담을 담당하는 파이텔, 임상 데이터를 수집하는 트루벤헬스애널리틱스 등을 인수했다. 이들 인수에 쓴 비용만 38억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2021년 초엔 IBM이 왓슨의 헬스케어 사업을 매각하려고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크리슈나 취임 후 기업 인수 11건

2020년 IBM은 체질 개선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1990년부터 30년간 IBM에 근무한 아르빈드 크리슈나를 CEO로 임명했다. 인도공대(IIT) 출신인 그는 1990년부터 IBM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정보보안 분야 엔지니어로 일했다. 클라우드 컴퓨팅·인지 소프트웨어 사업부문을 총괄했고 신기술 연구소인 IBM리서치 소장을 맡았다. 크리슈나는 IBM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 레드햇 인수를 진두지휘했다. 레드햇은 세계 최대 오픈소스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 기업용 솔루션 업체다. 클라우드 컴퓨팅 선두 기업인 아마존 오라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9년 레드햇을 340억달러에 인수하면서 크리슈나는 “IBM의 재기를 위해 레드햇 인수가 꼭 필요하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4월 크리슈나 CEO 취임 후 IBM이 발표한 기업 인수 계약만 11건이 넘는다. 이들은 모두 클라우드 컴퓨팅과 AI 기업이다. 2020년 IBM이 인수 절차를 마친 기업은 7개다. 인수 비용으로 7억2300만달러를 지출했다. 2021년 1분기에도 9억8700만달러를 투입해 3개 기업을 인수했다. 2분기에 IBM은 인수합병(M&A) 비용으로 17억5000만달러를 썼다. 레드햇 인수 이후 분기 지출이 가장 많았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기업인 마이인베니오, 데이터베이스 앱 관리 기업 터보노믹, 세일즈포스 컨설팅 기업 왜그를 사들였다. 클라우드 솔루션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IBM은 10년간 기업을 바꾸고 재건하기 위해 1200억달러 넘게 투자했다. 클라우드 운영, AI 제품 확대, 보안 서비스 강화 등에 지출한 비용이 290억달러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AI에 집중하기 위해 IBM은 사업 조정에도 나섰다. 2021년 말까지 19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관리 서비스 사업부를 분사할 계획이다. 반도체 설계에도 집중하고 있다. 2021년 5월 세계 처음으로 2㎚(1㎚=10억분의 1m) 공정으로 제작한 반도체칩을 공개했다. 일반적으로 생산되는 7㎚ 칩보다 성능이 45% 높지만 에너지 사용은 75%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24년 말이나 2025년 생산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2021년 2분기 IBM은 월스트리트 예상을 넘어선 매출을 올렸다. 3년 만에 증가폭이 가장 컸다. 캐티 허버티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IBM 목표주가를 152달러에서 164달러로 높였다. 그는 “실적 호전은 수요가 늘고 사업 실행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 공략


최근 10년간 IBM의 주가 흐름은 초라했다. S&P500지수가 280% 올랐지만 IBM 주가는 20% 하락했다. 배당금을 재투자했다고 가정하면 S&P500 수익률은 360%인 데 비해 IBM은 20% 미만으로 초라한 성적이다. 클라우드 시장에서 많은 기업이 공격적 투자와 M&A로 몸집을 불렸지만 매출이 정체된 IBM은 주당 수익을 높이기 위해 비용을 줄이고 주식을 매입했다. 빠르게 바뀌는 비즈니스 환경에 효과적인 속도로 대응하지 못했다. IBM의 미래를 두고 다양한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IBM은 2021년 변화를 앞뒀다. 연말 인프라 관리 서비스 부문이 분사해 킨드릴이 출범하면 클라우드 컴퓨팅과 AI 사업부 몸집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레드햇 인수로 IBM이 공개형 클라우드와 폐쇄형 클라우드를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은 강점으로 꼽힌다. 아마존, MS, 알파벳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분야는 공개형 클라우드 시장이다. 이들에 비해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범위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크리슈나 CEO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이 장기적으로 1조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토대로 IBM이 안정적인 매출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IBM은 2022년부터 고배당 대신 기업 성장에 집중하기로 전략을 바꿨다. 최근 1년간 잉여현금흐름(FCF)의 40%인 58억달러를 배당금으로 지출했다. 26년간 배당금을 늘려온 IBM은 내년 배당금을 줄이겠다고 공표했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기술에 투자를 집중하기 위해서다.
IBM 주가는 다른 IT 기업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가수익비율(PER)은 12배로 아마존, MS, 알파벳보다 낮다. PER이 낮으면 갑작스레 주가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클라우드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은 위험 요인이다. 버핏이 3년 전 IBM 주식을 처분했던 이유기도 하다. IBM은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에서 강자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다른 경쟁사들도 폐쇄형 클라우드의 보안성과 공개형 클라우드의 확장성을 결합한 새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IBM의 사업 전환 속도가 다른 IT 기업에 비해 느린 것도 투자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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