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시대의 욕망을 읽는 브랜드, 문화가 되다

브랜드는 어떻게 아이콘이 되는가

더글라스 B. 홀트 지음
윤덕환 옮김 / 한국경제신문
436쪽│1만9800원
할리데이비슨, 코카콜라, ESPN, 마운틴듀 등은 미국에서 단순한 상품을 넘어 강력한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들 브랜드는 마케터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브랜드를 문화 아이콘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창의적인 광고와 브랜딩 전략을 총동원한다. 그래도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 대체 문화 아이콘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영국 옥스퍼드대 마케팅 석좌교수인 저자는 《브랜드는 어떻게 아이콘이 되는가》에서 아이코닉 브랜드(문화 아이콘이 된 브랜드)는 전통적인 마케팅 방법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고객 세분화, 타기팅, 포지셔닝, 브랜드 충성도 등 마케팅 기본 원리를 뒤흔드는 도발적인 주장이다. 대신 저자는 정치·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사람들의 욕망과 불안을 달랠 수 있는 브랜드가 문화적 아이콘이 된다고 강조한다.코로나 맥주는 1990년대 미국의 국민 맥주로 떠올랐다. 단순히 ‘휴식과 기분 전환’이란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미국 노동 시장은 급변하고 있었다. 외주화가 시작됐고, 고용 안정이 무너졌다. 중산층 월급쟁이들이 일상적인 감원과 해고 대상이 됐다. 멕시코 해변을 떠올리는 코로나 맥주는 직장인에게 퇴근 후 안식처가 됐다.

시대가 잘 맞으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아이코닉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할리데이비슨은 기업이 브랜딩을 주도하지 않았고, 광고가 체계적으로 집행된 적도 없다. 할리데이비슨을 인수한 회사는 오히려 기존의 충성 고객을 버리려고 시도한 적도 있다. 할리데이비슨이 오랫동안 폭주족, 무법자나 타는 브랜드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중산층, 중년 백인 남성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새로운 보수주의의 부상, 개척정신의 복원이란 시대상과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한다. 할리데이비슨은 ‘미국다움’ ‘행동하는 남성’을 대변하는 상징이었다.

원저는 2004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다. 적잖은 세월이 흘렀지만 참신한 시각과 날카로운 분석으로 학계와 업계에서 여전히 널리 읽히는 명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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