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Ⅱ' 박본 연출 "한국 연예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완벽주의"

한국계 독일 극작가 겸 연출가…2017년 베를린연극제 희곡상 수상
"로맨틱코미디·공포·액션 등 장르 혼합된 K드라마 흥미로워"
박본(33)은 1987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활동하는 극작가 겸 연출가다. 이름은 옛 서독의 수도 본(Bonn)에서 따왔다.

박본 연출이 국립극단을 통해 한국 아이돌 문화의 이면을 탐구한 신작 '사랑Ⅱ LIEBEⅡ'를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자살한 아이돌들이 지구의 핵에 머물며 아이돌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무대에선 K팝 아이돌의 공연을 보는 듯한 노래와 안무가 펼쳐지고, 이 과정에서 완벽주의, 무결점에 대한 갈망 등 한국 연예산업의 모습이 드러난다.

박본 연출이 K팝과 K드라마 등 한국의 아이돌 문화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국 연예산업의 완벽주의에 있었다. 24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스튜디오 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하루 15∼16시간씩 연습하는 아이돌의 훈련 문화를 보면서 그들이 음악적인 독창성보다는 완벽한 아이돌이 되려 노력한다는 점이 핵심 아이디어로 다가왔다"며 "결국 한국의 연예산업을 통해 한국 사회와 정신에 대해 고민하고 접근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랑Ⅱ'란 제목도 완벽을 추구하는 연예산업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는 "고통, 아픔, 때로는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후속편을 찾자는 의미에서 '사랑Ⅱ'란 제목을 붙였다. (작품은)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더 좋은 버전을 찾는 여정이다"라면서 "한국의 연예산업이 완벽을 추구하는데 그렇다면 사랑보다 더 완벽한 사랑은 뭘까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본은 한국 연예산업의 완벽주의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그는 "18∼19세의 아이돌이 랩을 완벽하게 부른다.

문화와 역사적인 맥락은 빠져있지만, 노래를 즐기고 듣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며 "중요한 것은 (다른 문화의) 핵심을 추출해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는 K드라마의 형식도 반영돼 있다.

그가 발견한 한국 드라마의 특징은 여러 장르의 혼합이다.

"로맨틱코미디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복수를 하고, 공포스럽다가 액션이었다가 다시 로맨틱으로 돌아오는 장르의 혼합이 흥미로웠어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넷플릭스에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돼 있죠. 하지만 그 안에는 폭력성이 있고, 정치적인 이야기도 담겨 있어요.

공연에서 K드라마의 구조를 반영해 보여주려 했습니다.

"
'사랑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무, 청룡, 주작, 이무기 등 동양 설화와 전설 속 동물들의 이름으로 나온다.

이에 대해 그는 "한 친구가 보여준 한국의 오래된 지도에 신화 속 동물이 있었는데, 그들은 실제 왕국의 왕과 연결돼 있었다.

신화와 현실이 연결돼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극에서는) 왕국을 연예산업으로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무기 설화가 흥미로웠다면서 "바다에서 1만 년간 훈련한 뱀이 누군가 그 존재를 부정하면 다시 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한국의 연예산업을 떠오르게 했다"며 "아이돌들이 막상 존재가 부정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 설화와 닮았다고 생각했고, 이것은 한국의 모습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박본은 청소년 시절 베를린 민중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이곳 청소년 연극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연극에 발을 디뎠다.

2010년 베를린예술대학 극작과에 입학한 그는 2학년 때 게임 '슈퍼마리오'에서 착안한 '젊은 2D 슈퍼마리오의 슬픔'을 첫 작품으로 선보였고, 이 작품으로 하이델베르크연극제 희곡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2017년에는 어두운 소재를 자신만의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낸 '으르렁대는 은하수'로 베를린연극제 희곡상을 받았다.

그는 작품을 준비할 때면 항상 배우들과 소통하며 대본을 쓴다.

이번에도 K팝이나 K드라마, 신화에 대해 배우들과 이야기한 것을 대본에 반영했다고 한다.

배우를 알아야만 그에 어울리는 대사와 표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연출은 배우와 소통하며 알아가고 신뢰를 쌓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죠. 한국어를 배워 다음에는 꼭 한국어로 연출하고 싶습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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