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라열의 블록체인 인사이트] (2) 정부 규제엔 치열한 저항, 거래소엔 자발적 투항

너무나 잘 생긴 황소를 제물로 쓰기에 아까워 다른 황소를 제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포세이돈의 분노를 산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는 결국 황소를 사랑하게 되는 저주를 받는다. 황소와 사랑에 빠진 파시파에는 암소의 거죽까지 뒤집어쓰고 황소와 사랑을 나누게 되고 그 결과 둘 사이에서 머리는 황소, 몸은 사람인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나게 된다. 미노타우로스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왕국의 사람들을 하나둘씩 잡아먹는 난폭한 존재가 되어 결국 크레타섬의 미궁에 갇히게 되고, 후에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얼마 전 국내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여한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블록체인 플랫폼의 본질이 ‘효율성’이 아닌 ‘탈중앙화’에 있음을 다시금 강조했다. 블록체인의 ’효율성’이 좋지 않음을 인정한 것이다. 비단 비탈릭뿐만 아니라 업계에 있는 대부분의 개발자, 전문가들도 블록체인 기술의 비용적 문제, 기술적인 한계, 제한된 사용성 등은 현재 블록체인 기술이 완벽히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인 문제점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술의 근본 개념이자 가장 큰 장점이라 말하는 ‘탈중앙화’의 경우는 어떨까.

국내의 몇몇 블록체인 전문가들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분리할 수 없다고 여전히 주장하고 있다.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에서 그 개발 주체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코인(더욱 정확하게는 ‘토큰’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토큰 이코노미’)의 발행으로 한정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덕분에 블록체인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이 ‘블록체인=암호화폐’라는 억지스러운 등식을 너무나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이러한 주장의 주된 논거는 2가지이다. 첫 번째는 분산 처리 방식에서 개별 노드들에 대한 보상이 필수적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암호화폐가 활성화되어야 블록체인 산업 전반을 견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개인들에게 보상될 코인의 발행이 필요하니 ICO에 대한 규제를 풀어달라는 말이고,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주체인 거래소에 대해 규제가 사라져야 대한민국이 블록체인 산업에 있어 국제적으로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탈중앙화가 된 시스템하에서 그 시스템을 개발, 운영한 사람들은 어디서 수익을 낼 수 있는가, 라는 궁금증이 자연스레 생기게 된다. 물론 이에 대한 답은 한결같다. 일정량의 토큰을 발행한 개발 주체는 토큰의 가치가 올라가는 순간 그에 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용어인 주조차익, 즉 시뇨리지(seigniorage)가 블록체인의 기반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뇨리지는 봉건주의 시대에는 왕이, 현재는 각 국가의 중앙은행이,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이 독점해왔던 개념이다. 결국, 토큰 이코노미를 추구한다는 이들의 ‘탈중앙화’라는 것은 기존 ‘중앙화’에 대한 근본적인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앙화’의 대상을 바꾸려는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뜨거운 아이스크림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앙화’된 블록체인 또한 형용모순이다. 만약 진정한 의미의 ‘탈중앙화’를 바탕으로 한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을 소망한다면, 참여자들에게 제공하는 코인의 가치가 실제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네트워크의 가치와 어떤 식으로 연동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다음으로 시뇨리지의 형태가 아닌 명확한 수익 시스템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새롭게 ‘중앙집중화’ 되어가는 거래소의 퇴출을 통해 진정한 ‘탈중앙화’를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지금 이 순간에도 ICO를 통해 탄생한 수많은 코인이 상장을 위해 거래소들에 뜨거운 구애를 진행 중이다. 황소가 너무나 매력적인 나머지 사랑에 빠졌던 파시파에가 괴물을 잉태했듯이, 매력적인 블록체인 기술에 반한 이들이 정부의 규제에 대해서는 치열한 저항을, 거래소에 대해서는 자발적 투항을 통해 ‘중앙집중형’이며 ‘탈중앙’적인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만들어 가고 있다.

황라열 한경닷컴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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