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추락하는 증시가 가르쳐주는 코로나 경제쇼크 해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증시는 경제의 창(窓)이다. 냉정한 투자자들의 집단적 분석과 평가가 경제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점은 거듭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펀드멘탈도, 기술적 분석도 무시한채 수직하강중인 글로벌 증시의 움직임은 코로나 경제 쇼크 극복이 지난한 과정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헬리콥터 머니'를 살포한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각국 정부는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국증시는 최근 한달새 20~40%에 폭락했다. 한달 하락률은 독일 39%,미국 32%,영국 31%,인도 30%,한국 29%,일본 29%,브라질 21% 등이다. 백약이 무효인듯 자유낙하중인 증시는 무력감을 준다. 그러나 추락양상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코로나 경제쇼크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얻게 된다. 핵심은 제로금리도 양적완화도 재난기본소득도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약발 안먹히는 제로금리·양적완화

제로금리부터 보자. 미국은 이달초 불과 12일 만에 각각 0.5%포인트, 1%포인트라는 파격적인 금리 '빅 컷'을 단행했다. 하지만 빅컷 단행 당일조차 뉴욕증시는 반등은 고사하고 더 큰 공포에 휩싸이며 10% 안팎의 기록적인 추락세를 보였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공조해 제로금리로 유동성을 확대에 나서자 무너질 것 같던 시스템이 안정세로 돌아섰던 것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당시는 은행 보험 등 금융사의 부실이 뇌관이었지만 지금은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생산·물류·소비가 원천적으로 복합위기여서 해법도 달라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다.

중앙은행들이 '뉴 노멀'이라며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양적완화도 약발을 안먹히는 모습이다. 미국 Fed가 국채 5000억 달러, 모기지채권 2000억 달러 등 7000억 달러의 양적완화를 발표한 날에도 뉴욕증시는 곤두박질쳤다. 이번 양적완화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10년 11월부터 7개월간 총 6000억달러의 장기국채를 사들인 QE2(2단계 양적완화)때보다 크지만 시장은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 '최종 대부자' 중앙은행의 명성에 큰 금을 내고 만 결과다. 예전처럼 무제한 양적완화(QE3)라는 승부수를 던지더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재난기본소득 제안 '봇물'이지만 실패가능성 커

여당과 좌파 진영에서 봇물처럼 쏟아지고,야당도 숟가락을 올리고 있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증시 반응도 냉소적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중에 성인 한사람당 10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구체적 구상을 밝힌 17일에도 다우지수는 폭락했다.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상품권이나 현금형태로 여러 차례 기본소득을 지급했지만 소비증가가 미미했던 사실을 기억한 결과일 것이다. 현금으로 받든, 상품권으로 받든 기보유한 현금의 지출억제현상이 나타나며 소비진작 효과는 크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얼마정도라도 소비가 늘지 않으냐고 할수도 있갰다. 하지만 막대한 재원투입으로 정부 재정 부실을 재촉하고,다른 곳에 사용해 더 큰 효과를 낼수 있는 기회의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신중한 판단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코로나가 부른 '미증유의 경제 위기'는 속수무책인가. 중앙은행과 정부가 한계를 드러냈다며 패닉에 빠질 필요는 없다. 지난 17일 미국증시를 5% 이상 끌어올린 Fed의 기업어음(CP) 매입조치가 해법의 실마리를 보여준다. Fed가 CP매입기구(CPFF)를 만들어 1조 달러까지 사들이겠다고 발표하자 당시 다우지수는 급반등했다. 매입대상이 우량CP로 제한되고, 회사별로 직전 1년간 CP발행액 이내에서 사들인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여러 대책 중에서 유일하게 시장참가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것이다. 무리한 소비확대나 유동성 공급 정책보다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신용보강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피해기업 신용보강에 집중하는 '질적 완화'가 해법

양적완화는 사전적으로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확대하는 정책’으로 정의된다. CP매입은 이런 정의에 비춰 상당히 결이 다른 정책이며, 대차대조표초의 구성을 변경하는 '질적완화'도 아니다.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질적완화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시장이 질적완화정책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수 있다. 대표적인 질적완화 정책은 회사채 등을 중앙은행이 나서서 사주는 것이며, 이런 조치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시행돼 효과를 발휘했다. 이런 점을 잘아는 Fed도 다양한 직간접적인 질적완화카드를 준비중이다.

문제는 한국이다.Fed는 막강한 달러를 활용해 다양한 정책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정 급하면 돈을 찍어내고, 이게 최신의 현대통화이론(MMT)이라고 변명하는 방법도 있다.하지만 한국은 주요국 통화중 '변동성'이라면 빠지지 않는 원화로 미증유의 위기에 맞서야 한다. 헬리콥터 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도 적용하기 힘든 대외환경이다. 그런데도 미국에서조차 약발이 안 먹히는 제로금리니 양적완화를 거론하고, 재난기본소득 지급여부가 최대 화두로 부상한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늘 출범하는 위기관리 컨트롤타워 '비상경제회의'도 생사의 기로를 맞은 산업·업종 지원방안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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