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상속·증여세는 기업가정신 파괴…회사 키우기가 무섭다"

이민·폐업 부추기는 상속·증여세

'상속·증여세 이대로 좋은가'
한경 긴급좌담회
“지금의 상속·증여세제는 기업가정신을 파괴할 뿐이다.” “일본이나 독일의 명문 장수기업이 국내에선 나올 수 없다.” “투자를 확대하거나 사람을 뽑아 기업을 키울 이유가 없다.”
‘상속·증여세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지난 24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경제 규모와 사회구조 변화에 맞춰 상속세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배원기 홍익대 경영대학원 세무학과 교수,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24일 ‘상속·증여세 제도,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연 긴급좌담회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현행 제도를 그대로 두면 중소·중견기업인의 ‘상속세 폐업’과 해외 이민만 부추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왔다.이날 좌담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 태스크포스(가업상속TF)’ 소속 김병욱 의원과 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 배원기 홍익대 경영대학원 세무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사회=이심기 정치부장
▷이심기 정치부장=현행 가업상속공제는 까다로운 요건 탓에 유명무실한 제도로 굳어졌다는 지적이 많다.▷송공석 대표=요즘 기업인들의 최대 고민은 ‘회사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언제쯤 회사 문을 닫아야 하나’라는 얘기가 많다. 상속·증여세 부담 탓에 어려움이 크다.

▷김준동 부회장=대부분 기업인이 자신이 세운 회사를 100~200년 장수기업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행 상속세제가 기업이 축적한 자산과 기술을 다음 세대에 넘기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은 장수기업이 3만3000개에 달하는 반면 우리는 8개에 불과하다.

▷조병선 원장=회사를 키우려는 기업인들의 의지가 꺾이고 있다. 상속세 부담을 해결하지 못하면 회사를 팔겠다는 기업인을 많이 본다. 상속세로 본인이 일군 자산의 절반 이상을 내면 경영권을 유지하기도 어렵다.▷이 부장=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송 대표=최고 65%에 달하는 상속세율이다. 과도한 상속·증여세 부담으로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사업을 일구는 기업가정신이 꺾이고 있다.▷김병욱 의원=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기업을 일구는 사람을 위한 유인책과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은행에 돈을 묵혀두는 기업인보다 투자하고 상속하는 기업인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배원기 교수=현재의 상속·증여세제는 기업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나 소득을 더 많이 올릴 근로 의욕을 감소시킨다.

▷이 부장=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지 않나.

▷송 대표=비현실적이다. 가업상속공제의 사후관리 기간은 10년이다. 이 기간엔 업종도 바꿀 수 없고, 근로자 한 명도 줄여서는 안 된다. 업종 전환은커녕 주력 상품만 바꿔도 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동시에 상속세 폭탄을 맞는다. 누가 기업을 키우려고 하겠나.

▷김 부회장=고용유지 조건도 10년에서 5년으로 줄여야 한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는 게 7년이다. 그 정도로 줄일 거면 하지 않는 게 낫다. 고용 유지 조건도 근로자 수가 아니라 임금총액을 기준으로 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 부장=기업들이 과도한 세 부담을 피하려고 편법을 쓴다는 얘기도 있다.

▷송 대표=주변 기업인을 보면 우회적 상속 수단을 찾는 경우가 있다. 자녀 명의로 회사를 세운 뒤 본인 회사의 일감을 넘겨주고 나중에 자기 회사를 폐업한다. 기업인 스스로 한심한 방법이라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김 부회장=독일과 일본은 가업상속공제와 관련한 사후관리 요건을 기업 현실에 맞게 설정했다. 섬유업체가 다음 세대에서 정보기술(IT) 회사로 탈바꿈하는 등 업종전환 제한도 없다. 우리만 다 묶어 놨다.

▷이 부장=가업승계가 부의 대물림 수단이 된다는 부정적 여론도 있다.

▷조 원장=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상속세 체계에도 그런 인식이 반영됐다.

▷김 부회장=투자와 ‘가업상속’보다는 ‘기업승계’로 명칭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사업승계’, 독일은 ‘기업승계’라고 한다. 두 나라는 기업승계를 국가경쟁력 향상과 직결된다고 보고 배려한다.

▷송 대표=무엇보다 현행 세제가 기업인에게 징벌적이다. 기업인을 잠재적 탈세자로 보고 있다.

▷김 의원=제도를 손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을 물려받는 2세의 자질 검증이 필요하다. 우리사주조합과 직원이 경영권을 넘겨받을 때 세제 혜택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장=민주당과 정부도 가업승계 제도를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현행 3000억원 미만인 상속·증여세 감면 기준을 5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상속 후 10년간 고용을 100% 유지해야 하는 요건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조 원장=기업 규모를 키우는 동시에 명문 장수기업으로 이어가는 것을 도와야 한다. 중견기업은 ‘사세를 키우면 징벌적 처분을 받는다’고 하소연한다.

▷김 의원=인정한다. 기업이 돈을 쥐기만 하고 풀지 않으면 국가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 투자도 하고 법인세도 내야 한다. 창업가인 최대주주가 투자를 해 회사를 키우더라도 막상 상속할 때는 규모가 클수록 높은 할증률을 적용받는다. 상속세 할증률의 부작용이 크다.

▷김 부회장=가업상속공제 제도 혜택을 받는 매출 요건을 현행 3000억원 미만에서 1조원까지 늘려야 한다. 매출 3000억~1조원인 기업이 700~800개에 이른다.

▷송 대표=공제 대상 기준을 매출 대신 순자산으로 바꿨으면 한다. 매출로는 회사 규모와 실속을 가늠하기 어렵다. 매출이 커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이 많아서다.

▷이 부장=높은 세 부담에 폐업하거나 해외로 떠나는 기업인이 늘고 있다.

▷배 교수=이미 상위 10%의 소득세율 분담 비중이 80%에 달한다. 상위 1%가 전체 소득세의 절반 가까이를 내고 있다. 특정 계층에 대한 증세에는 한계가 있다. 고율의 소득과세는 자산 해외도피 등 부작용을 일으킨다.

▷조 원장=상속세는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웨덴은 진보 정권이 들어선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다. 기업이 과도한 세금 부담에 못 이겨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는 등 문제가 불거지자 폐지한 것이다. 복지가 발달한 국가가 가업승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상속세를 폐지한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의원=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해 소득세율은 낮고 상속세율은 높은 편이다. 성장동력원을 발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소득세율을 올리고 상속·증여세를 없애는 것도 고민해봐야 한다.

▷배 교수=투자와 고용을 진작할 수 있도록 고액자산가의 상속세를 줄이는 대신 소득세 징수 범위를 대폭 늘려야 한다.▷송 대표=기업인들이 공익법인(재단)에 주식을 증여할 때 비과세 한도도 높여야 한다. 재단을 세워 사회에 떳떳하게 기여하는 길을 터줬으면 한다.

정리=김익환/김우섭 기자 lovepen@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