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원격의료·숙박공유…기득권 반대에 규제완화 손도 못댔다

혁신성장·일자리 창출 방안

정부, 카풀 등 허용 추진했지만 與 반대로 막판 제외
숙박공유·원격의료 등도 원론적 내용만 담아
공유업계, 공무원 복지부동에 "속 터진다"
정부는 24일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을 내놓으며 “핵심규제 혁신을 추진해 일자리 창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승차공유(카풀), 도심 내 숙박공유, 원격의료 등 현안들의 규제완화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거나 “향후 논의하겠다”는 정도로 넘어갔다. 이들 사업은 시장 수요가 많음에도 택시 운전기사, 숙박업체, 의사 등 기득권의 반대로 허용이 안되고 있다. 카풀 등 일부 서비스의 경우 정부는 허용을 추진했으나 여당의 반대로 막판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에 발목 잡힌 카풀정부가 이날 발표한 공유경제 확대 대책에는 ‘카풀’이나 ‘승차공유’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신(新)교통서비스를 활성화하되 기존 운수업계 경쟁력 강화 등 상생방안 마련 병행”이라고만 돼 있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신교통서비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예를 들어 설명하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어 여기서 더 나아가 설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 차관은 “연내에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만 답했고 그 대상이 카풀인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최근 카풀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하고 운전자를 모집하자 지난 18일 전국 택시 기사 6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총파업을 벌이는 등 택시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같은 날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카풀 사업에 대해 “(반대가 있어도) 정면돌파하면서 규제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번 대책에 카풀 사업 허용이 포함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정부는 카풀 허용을 추진했으나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반대가 심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책을 사전 설명하기 위해 지난 23일 한 브리핑이 당초 오후 2시에서 4시로 연기됐는데 당일 당정협의에서 카풀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조직력이 강한 택시 운전기사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정치인들에겐 큰 부담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료들 폭탄 돌리기 그만하라”

숙박공유 등 다른 규제 혁신안도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현재 외국인은 도심에서 숙박공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내국인은 안 된다. 호텔 모텔 등 숙박업계가 반대하고 있어서다.정부는 이날 대책에 “숙박공유 허용범위 확대와 투숙객 안전 확보 등 제도정비 병행”이라는 원론적 내용만 담았다. 정부는 작년 말 발표한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서도 숙박공유를 확대 허용하겠다고 했는데 거기서 더 진전된 내용은 없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도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의사가 다른 의사나 간호사와 원격으로 협진(協診)을 할 수 있게 추진하겠다는 내용만 담겼다.

김 부총리는 이날 대책 발표 뒤 공유경제 업계 대표들을 만났다. 숙박공유 업체 코자자의 조산구 대표는 “7년간 사업을 하면서 관련 법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가슴이 터지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게임업체인 블루홀 의장인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공무원은 1~2년 뒤 보직이 바뀌니 ‘내가 있을 때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이들이 있다”며 “언젠가는 후배 관료가 해야 한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폭탄 돌리기’를 그만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돈 풀기 나섰지만…

정부는 민간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총 15조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다. 중소·중견기업이 시설투자를 하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대출이나 출자를 통해 비용의 80% 정도를 지원한다.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에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이 총 1조원 규모의 보증을 제공한다. 조선 기자재업체에도 신·기보와 무역보험공사가 총 3000억원 규모의 보증을 지원한다.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상위권”이라며 “지원을 늘려도 규제개혁이 동반되지 않으면 경쟁력 없는 기업의 수명만 연장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 자금으로 연명하는 기존 기업이 많아지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춘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태훈/성수영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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