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블라인드 채용'에 난색 "직무에 적합한 인재 어떻게 뽑나"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 할당' 논란

기업들 '블라인드 범위' 촉각
"출신지·신체조건 현재 요구안해
대학·학력까지 기재 말라는 건 첨단업종 등 사람뽑지 말라는 말"
23일 주요 기업 인사팀장들의 최대 화젯거리는 ‘블라인드 채용’이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에 이 방식의 채용을 주문하면서 “민간 대기업에도 권유하고 싶다”고 언급하면서다. 강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막 집권한 대통령의 ‘권유’인 만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는 전언이다. 결론은 대체로 “이력서에 출신학교와 지역 등을 아예 기입하지 말라”는 방식의 블라인드 채용은 민간에 도입하기 어렵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우선 인사담당자들은 “원래 입사 전형에 블라인드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기 시작한 곳은 민간기업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1990년대 중반 출생지와 가족관계, 신체조건 등을 이력서에 표기하지 않도록 결정한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주요 기업은 지원자의 개인정보 항목을 순차적으로 줄여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공공부문에 요구한 블라인드 채용의 경우 민간에 적용하기엔 지나치게 변별력을 떨어뜨리는 것이어서 곤란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력서에 학벌·학력·출신지·신체조건 등 차별적 요인을 일절 기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이처럼 거의 모든 개인정보를 차단하는 형태의 방식으로는 해당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혹여 사람을 잘못 뽑을 경우 재교육 비용부담과 함께 조직생산성 저하 등의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공계 인력 채용비중이 높은 제조업계의 고민이 컸다. 한 전자회사 관계자는 “첨단 기술을 요구하는 분야일수록 대학에 따라 교육 설비의 차이가 크고 교육 수준 차이도 벌어진다”며 “학과뿐 아니라 출신 대학까지 살펴야 역량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학업계 관계자도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화학업종에서 출신 대학과 학과를 보지 말고 사람을 뽑으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다.이력서의 정보를 제한하면 취업준비생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 유통대기업의 인사담당 임원은 “블라인드 전형을 한다고 해서 취업문턱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기업은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더 까다로운 방식의 채용시스템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른 부담은 그대로 취업준비생에게 전가돼 수험생은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영어점수와 학점이 일정 수준만 넘으면 서류 전형은 모두 통과시켰던 삼성이 단적인 예다. 지원자 대부분이 삼성 적성검사(GSAT) 응시 자격을 얻으며 한때 응시자가 10만 명을 넘었다. 이에 삼성은 2015년 하반기부터 직무 적합성 평가를 통과한 지원자만 GSAT를 칠 수 있도록 해 응시자를 큰 폭으로 줄였다.

기업들은 스스로 ‘탈(脫)스펙’ 전형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롯데·SK이노베이션·포스코·CJ 등 많은 기업은 서류전형을 통과한 지원자에 대해서는 학벌 등 인적사항을 가린 채 면접을 한다.

공태윤/노경목/고재연 기자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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