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새 무늬 항아리'로 바뀐 '백자청화매조문호'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 숨이야 막히건 말건 무슨 뜻인지 몰라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니 그냥 지나쳐 버린다. 그런 그에게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떡 하니 막아선다. 백자청화매조문호(白磁靑畵梅鳥文壺)? 또 갸우뚱하면서 관람객은 스스로 책망한다. "그래 난 무식해!" 국민과 함께하는 박물관. 국민과 함께하는 문화유산이라는 구호는 난수표를 방불케 하는 이런 '이름' 앞에서 그 국민을 주눅들게 만들곤 한다. 이들에 비해 좀 더 친숙하지만 여전히 알쏭달쏭 퀴즈 같은 안내판을 더 본다.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사리가 무슨 뼈라는 건 대강을 짐작하겠는데 장엄구는 또 뭐냐?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사찰 같은 데서 많이 본 듯 한데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국사책인지 어딘지 말은 많이 들은 듯하고, 그 작가가 안견이라는 사람이라는 말도 들은 것 같은데 몽유도원도가 무슨 뜻이냐? 영화 '몽정기'하고는 무슨 관계인가 되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관람객들에게 지나친 '무식감'을 심어주게 되면 다음과 같은 반응으로 발전한다. "그래, 네들끼리 잘 해 먹어라!" 이렇게 해서 문화유산은 시민에게서 멀어져 간다. 이름은 말할 것도 없이 사람에게도 사물에게도 얼굴이다. 대중 혹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친숙해 지겠다며 부모가 지어준 이름까지 헌신짝 버리듯 하고는 요상한 서양식 이름을 간택하는 판국에 그 정확한 의미는 종잡기 힘드나 분명 위압감을 주는 이름은 그것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필연적으로 내려다 보게 만든다. 1대 1로 만나고 말을 걸고 그 문화유산이 하는 말을 무엇인가 듣고 싶은데 그런 소박한 마음도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이라는 해괴망측한 명패 안에 주눅들고 만다. 사실 문화유산 용어가 너무 어렵다는 말은 수없이 되풀이됐다. 그래서 알기 쉬운 우리말로 그 용어들을 바꾸는 작업도 여러 차례 시도됐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던가? 오는 10월28일 재개관하는 새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또 칼을 빼내어 들었다. 아주 어려운 이름은 아예 명패를 확 바꾸기로 했다.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은 '물가풍경무늬 정병'(부처에게 올리는 맑은 물을 담는 병)라고 바꾸었다. 백자청화매조문호는 '매화 새 무늬 항아리'로 새 옷을 입혔다. ▲청자어룡형주자(靑磁魚龍形注子)→어룡 모양 주전자 ▲청자과형병(靑磁瓜形甁)→참외 모양 병 ▲분청사기상감인화용문호(粉靑沙器象嵌印花龍文壺)→용 무늬 항아리 ▲분청사기상감어문매병(粉靑沙器象嵌魚文梅甁)→물고기 무늬 매병 ▲백자철화수뉴문병(白磁鐵畵垂紐文甁)→끈 무늬 병 ▲사리장엄구→사리 갖춤 ▲죽제고비(竹製考備)→편지꽂이 ▲김정희 필 묵소거사 자찬(金正喜筆 默笑居士自讚)→추사 김정희가 쓴 자신의 별호에 대한 글. 10월 개막 때 일반에 선보일 문화유산들을 이런 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부디 "그래 난 무식해", "그래, 네들끼리 잘 해 먹어라"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기를 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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