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의 '허물' 벗고 영혼의 '해탈'로..한승원 새 장편 '화사'

''아름다운 배암…/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꽃대님 같다''(서정주 ''화사''부분)

소설가 한승원(62)씨의 새 장편 ''화사(花蛇)''(작가정신)는 뜨겁고도 차가운 작품이다.원초적인 욕망에 몸부림치는 육체와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인간 정신의 이중주.

서정주 시를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매우 관능적이다.

그 에로티시즘은 이글거리는 생명의 불꽃으로 끊임없이 타오른다.그러다가 잉걸불에 찬물을 끼얹는 것같은 파격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한다.

''낼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을 물어뜯는'' 꽃뱀의 대가리처럼.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성에 대한 본능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대생 해란이 자신을 둘러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참 생명의 자유를 찾는 얘기다.

해란은 성스럽게 처녀성을 바칠 대상을 찾지만 번번이 어긋난다.

대학 시간강사인 유부남 시인을 짝사랑하면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종돈장 일꾼과 어머니가 다니는 절의 젊은 승려에게도 야릇하게 끌린다.자신이 이모의 불륜에 의해 태어났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음습한 살내음과 음모 투성이인 세상.

결국 해란은 약혼자와 함께 찾아간 갈대마을의 선무당 남자에게 처녀성을 바치고 만다.

그 아픈 통과제의를 거치면서 그녀는 허물을 벗고 비로소 푸른 하늘을 꽃구름처럼,바람처럼 날아가는 한 마리 새가 된다.

작가는 책머리에서 한 제자의 편지를 보여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의 비대칭성처럼 도덕과 파격,얽매임과 자유의 양면을 발견하는데 저의 스물세해를 키운 건 바람이었어요''

럭비공 뿐만 아니라 모든 공은 주인의 의도대로 날아가기도 하지만 곧잘 배반하기도 한다.

비대칭으로 튀는 공의 탄력.

이것이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공이 새의 이미지로 치환되는 마지막 대목도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그것은 작품의 두 가지 대척점,샤머니즘적 관능과 우주적 해탈의 끝점에서 자연스럽게 만나진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그려진 두갈래 길처럼 위와 아래,꿈과 현실,영혼과 육체의 합일로 향하는 여정을 닮았다.

질펀한 표현들 사이사이에 ''갈대청을 울린 대금'' 혹은 ''청포묵처럼 희고 투명한'' 문장들이 분위기를 헹궈준다.

작가에게는 생명과 우주 바다가 동의어다.

꽃뱀처럼 푸른 하늘을 물어뜯는 처녀,아무런 구속도 없는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새,지상의 모든 것을 적시고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가는 바다.그는 그 생성과 소멸의 순환고리에서 잘 구워진 항아리 하나를 빚어 올린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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