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반성=발전" 180兆 굴리는 '헤지펀드의 제왕'…"성공하고 싶다면 실패도 기록해라"
블룸버그통신이 지난해 말 재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8 최고의 책’에서 다라 코샤로샤히 우버 최고경영자(CEO)와 데이비드 매케이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 CEO가 같은 책을 꼽아 눈길을 끌었다. 레이 달리오의 《원칙(Principles)》이다. 달리오는 1600억달러(약 180조원)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창업자 겸 최고투자책임자(CIO)다.

“실패도 기록하라”

"고통+반성=발전" 180兆 굴리는 '헤지펀드의 제왕'…"성공하고 싶다면 실패도 기록해라"
코샤로샤히 CEO는 달리오가 ‘어떻게 실패에서 배웠는지’에 주목했다. 그는 “사람은 성공을 높이 사고 실수를 간과하기 쉽다”며 “하지만 달리오가 해온 것처럼 실수를 철저히 돌아보는 것은 개선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고통+반성=발전.’ 달리오는 이 간단한 방정식을 제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5년 침실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브리지워터를 창업한 달리오는 1980년대 초 큰 위기를 맞았다. 시장 예측이 어긋나면서 큰 손실을 봤다.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없을 정도여서 모든 직원을 떠나 보내야 했다. 그 자신도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4000달러를 빌려야 했다. 이것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달리오는 회상했다. 그는 “파산하지 않고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내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란 질문으로 사고방식부터 바꿨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선 독립적으로 사물을 보는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눠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달리오 원칙’의 큰 줄기를 이루는 ‘개방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기 위해서는 극단적으로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직원의 실수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1990년대 초반 거래를 담당하던 직원이 고객을 대신해 주문해야 하는 것을 잊고 현금을 그대로 보관하면서 수십만달러의 손실을 봤다. ‘큰 손실을 초래하는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회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해고 등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달리오는 이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오류 기록’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는 “해고 조치는 다른 직원들이 실수를 숨기도록 해 나중에 더 큰 손해를 불러올 수 있다”며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우려면 모든 실수와 의견 차를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수가 발생하면 기록으로 남겨 문제의 중대성을 분석하고 책임자를 분명히 하는 절차를 확립한 것이 지속적인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투자업계의 ‘셰이퍼(shaper)’

1949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재즈음악가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의 외아들로 태어난 달리오는 발명가, 혁신가로 불리는 투자자다. 로버트 케건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달리오에 대해 ‘대단한 발명가’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투자전문 매체 aiCIO는 달리오를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에 비교하기도 했다. 달리오가 작은 아파트에서 브리지워터를 창업한 것은 잡스가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과 비슷하다. 달리오는 첫 직장에서 상사 폭행 등의 문제를 일으키며 해고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자신의 ‘공격성’을 다스리기 위해 명상에 빠져들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점도 세간에서 달리오를 잡스와 비교하는 이유 중 하나다.

브리지워터 역시 ‘투자업계의 애플’이라고 불리곤 했다. 애플과 마찬가지로 브리지워터도 퓨어알파펀드, 올웨더펀드 등 혁신적인 투자상품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브리지워터는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 당시에도 연 9%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철저한 거시경제 데이터 분석으로 통한 분산투자 기법으로, 브리지워터의 대표 펀드인 퓨어알파는 연평균 수익률이 11.9%에 달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퓨어알파의 지난해 수익률은 14.6%에 달했다.

1976년에서 1987년까지 세계은행(WB)에서 연금 운용을 담당한 힐다 오초아 스트래티지인베스트먼트 CEO는 “달리오의 진정한 혁신은 각각의 거시경제 데이터를 꾸준히 분석하는 것에서 나온다”며 “어떤 투자사보다 광범위한 데이터를 추출해서 분석해낸다”고 평가했다.

달리오 스스로는 잡스와 자신을 ‘셰이퍼’란 인간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는 모양을 만드는 공작기계나 사람이라는 뜻의 셰이퍼를 “특별하고 가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심과 반대를 극복하면서 자신의 비전을 아름답게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창업자 없이도 성공하는 조직 만드는 ‘원칙’

달리오의 남은 목표는 자신이 없어도 브리지워터를 성공하는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브리지워터 고유의 문화가 유지되는 원칙을 세우는 데 주력해왔다. 2006년부터 60여 개 원칙을 회사 내부에 공유했고 이를 토대로 212개의 원칙이 구체화됐다.

이 원칙에서 중요한 축 하나가 개방성이고 나머지 하나는 투명성이다. 예컨대 브리지워터에선 모든 회의를 녹화한다. 추후에 그 내용을 다시 보고 들으며 객관적인 관점에서 배울 수 있도록 기록한다는 취지다.

달리오도 인정하듯이 이처럼 ‘극단적인 투명성’을 강조하는 문화에 익숙해지기까지는 1년6개월에서 2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3분의 1의 직원이 퇴사한다고 NYT는 보도했다. 그렇게 기업의 문화에 적합한 사람들이 남아 문화를 유지하고 더 발전시켜 나가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