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석 신일산업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사무소에서 서큘레이터를 소개하고 있다. /신일산업 제공
정윤석 신일산업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사무소에서 서큘레이터를 소개하고 있다. /신일산업 제공
국내 1위 선풍기업체 신일산업은 1970~1980년대 냉장고와 세탁기까지 생산하던 회사였다. 강력한 모터가 핵심 경쟁력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신일은 휘청이기 시작했다. 선풍기 시장이 축소됐고, 중국산 값싼 선풍기가 밀려들었다. 2014년 회사는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일부 소액주주가 연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했다. 당시 김영 회장의 지분은 8.4%에 불과했다. 이것이 약점이었다. 반대세력은 경영진 교체를 요구했다. 시장엔 부도설이 돌았다. 은행 대출과 신용거래가 모두 막혔다. 생존이 어려울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신일산업은 3년 만에 다시 일어섰다.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445억원과 105억원. 사상 최대 수준이다. 서큘레이터 등 신제품 발굴에 성공한 결과다.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상반기 실적은 전년 대비 약 10% 증가했다.

◆“추락한 브랜드 만회할 혁신적 제품”

'공중분해' 위기 맞았던 신일산업, 어떻게 3년 만에 최대 실적 일궜나
“이러다가 M&A당하기 전에 회사 자체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2015년 경영진 사이에서 위기감이 커졌다. 분쟁을 벌이는 동안 회사 사정은 나빠졌다. 2015년 10여년 만에 처음 영업적자를 냈다. 경영권을 방어하느라 임직원들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지 못한 탓이다. 경영진은 오영석 CFO(현 부사장)를 중심으로 경영권 분쟁을 해결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나머지 직원들은 본연의 임무에 집중토록 했다.

TF팀은 우호지분 확보에 나섰다. 의결권을 가진 주주를 찾아가 설득했다. TF팀은 20~25%의 우호지분을 끌어모아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나머지 직원들도 발로 뛰었다. 신용거래를 끊었던 부품협력사와 판매망 설득에 나섰다. “믿어달라”고 말만 하지 않았다. 제품 품평회를 열고 정보를 공개해 가능성을 보여줬다. 등 돌렸던 거래처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윤석 신일산업 대표는 “50년 넘게 맺어온 거래처와의 관계, 직원들과의 소통이 위기극복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제품 개발과 관련해선 원칙을 세웠다. “(위기설로) 브랜드가 훼손된 만큼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할인 판매점 담당자와 얘기하다가 서큘레이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시 서큘레이터는 유럽에서 30만~40만원 정도에 판매되던 업소용 제품이었다. 디자인이 투박하고 소음이 심한 데다 가격도 비쌌다. ‘선풍기 명가’인 신일의 기술을 적용해 가정용 제품으로 바꾸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2015년 중국산 저가 제품을 들여와 판매해 봤다. 시장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반응이 좋았다. 당장 개발에 착수해 2016년 첫 제품이 나왔다. 지난해엔 입소문이 퍼져 불티나게 팔렸다. 새로운 판매망도 개척했다. 기존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홈쇼핑과 기업 간 거래(B2B) 시장을 뚫었다. 평창동계올림픽 난방기기 공급을 맡은 것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이었다.

◆날씨 빅데이터 활용, 비용 절감

날씨 빅데이터를 활용해 비용 절감에도 나섰다. 신일산업 매출은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매출의 70%가 냉난방 등 계절가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신일산업은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일별 최고·최저·평균기온 상대습도 등 날씨 정보와 주간 제품 판매량 등의 빅데이터를 구축해 전사적으로 공유한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품기획팀은 제품 수량 단가 물량 스케줄을 전략적으로 분석, 생산 계획을 세운다. 구매팀은 원·부자재를 구매하고, 영업팀은 판매전략을 수립한다.

예컨대 작년엔 이상고온에 따른 폭염을 예상해 선풍기 생산량을 늘렸다. 서큘레이터의 홈쇼핑 방송은 전년보다 20일 빨리 편성했다. 그 결과 선풍기와 서큘레이터 등 판매량이 전년 대비 52% 증가했다. 정 대표는 “빅데이터 구축을 통해 임대료 인건비 작업비 관리비 등을 줄여 2016년 약 30억원의 원가 절감 효과를 거뒀다”고 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