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선사 수주 마케팅에 걸림돌로 작용해온 수주가이드라인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생산원가 이하로 입찰가를 적어내는 적자수주를 원천적으로 금지했으나 이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선수금환급보증(RG)도 적극적으로 발급하기로 했다.
조선업계 '적자수주 금지령' 풀린다
◆공동수주·전략선종 입찰 시 ‘혜택’

2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해양금융종합센터를 통해 새로운 수주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핵심은 국내 대형 조선사가 공동으로 선박을 수주하거나 국내 선주가 발주한 선박을 수주하면 기존 국책은행의 수주가이드라인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한 것.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국내 대형 조선사들이 힘을 합쳐 해외에서 선박을 수주하는 경우 국내 업체 간 과당 경쟁 소지가 없어지기 때문에 가이드라인 대상에서 아예 빼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9월 세계 2위 선사인 MSC로부터 공동 수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11척(총 15억달러 규모)은 가이드라인을 적용받지 않아 RG 발급이 순조롭게 진행될 전망이다. 국내 선사가 상생을 위해 국내 조선사에 발주한 선박도 가이드라인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조선업계 '적자수주 금지령' 풀린다
한국이 강점을 지닌 ‘전략 선종’을 수주할 경우에도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수주 적정성 평가 모델 산식에서 제조 감가상각비, 일반관리비 등을 원가 항목에서 빼기로 해 원가보다 최대 6%가량 낮은 가격에 수주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현재 전략 선종으로는 액화천연가스(LNG)선,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 설비(LNG-FSRU), 초대형 컨테이너선, 셔틀 탱커, 초대형 유조선(VLCC) 등이 지정돼 있다. 정부는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의뢰해 반기에 한 번씩 전략 선종을 바꿀 예정이다.

일감이 10~15개월치 남은 조선사는 2~3%, 10개월 미만 남은 조선사는 최대 6%가량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수주하는 것도 허용해 주기로 했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으로부터 RG를 받는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는 모두 새로운 기준의 적용을 받는다.

◆조선사는 “가이드라인 아예 폐지해야”

정부가 RG 발급 기준이 되는 수주가이드라인을 대폭 낮춘 것은 글로벌 수주전에서 중국과 가격 경쟁이 가능하도록 지원해 조선사들이 ‘일감절벽’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글로벌 수주전에서 중국 등과 경쟁할 수 있도록 탄력적인 가격 제시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2015~2016년 대우조선 부실 사태를 겪은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국내 조선사 간 무분별한 저가 수주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수주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영업이익이 나지 않은 적자 수주에 대해선 선박 건조에 필요한 RG 발급을 원천적으로 금지한 것. 하지만 이로 인해 국내 조선사는 글로벌 수주전에서 밀리며 일감절벽에 처하게 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 척당 수주 가격이 원가보다 낮지만 중국은 대량 수주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을 줄여 이득을 보고 있으나 한국은 수주 자체가 불가능했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국내 업체끼리 과당 경쟁을 막기 위해 마련된 기준이 오히려 중국에 ‘반사이익’을 준 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적용받는 국책은행 대신 비싼 수수료를 물고 해외 금융회사에서 RG를 받기도 했다.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현실과 괴리가 컸던 가이드라인이 수정돼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후판 등 자재비와 최저임금 인상, 원화 강세 등 어려워진 수주 여건을 감안할 때 수주의 ‘족쇄’로 작용한 수주가이드라인 자체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더 많다. 낮은 인건비와 막대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 조선업계의 ‘고사’를 노리는 중국 조선사들과 경쟁하기엔 여전히 ‘불공평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