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권·영업권보다 인권이 더 중요"… 인권위 '일방 질주'에 사회 곳곳 '아우성'
지난해 9월 제주시의 한 이탈리아 음식점을 방문한 A씨 가족은 식당 입장을 거부당했다. 동행한 중학생 두 명과 9세 자녀 중 막내가 문제였다. 그 식당은 “안전사고 등을 이유로 13세 이하 아동의 식당 이용을 제한하기로 했다”며 나가줄 것을 요구한 것.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한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었다. 인권위는 24일 “아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사업주가 누리는 영업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며 차별을 철폐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그간 인권위의 권고는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에 주로 해당됐지만, A씨 사례처럼 민간영역으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그간 소홀했던 인권 사각지대를 비춘다는 의의도 있지만 “인권지상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하다 보니 인권이 아닌 다른 가치가 경시되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노키즈존’은 아동 차별행위

아동의 입장·이용을 제한하는 ‘노키즈존’은 최근 찬반논쟁을 불러일으킨 뜨거운 화두다. 아동뿐 아니라 ‘노틴에이저존’(십대 청소년의 이용을 막는 업장)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차별이라는 반발도 있지만 여론은 다소 다르다. 구인·구직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달 알바생 1092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75.9%가 노키즈존에 찬성했다.

하지만 이날 인권위는 이 같은 행위가 아동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최대한의 이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상업시설 운영자들에게는 헌법 제15조에 따라 영업의 자유가 보장된다”면서도 “이 같은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학습권·영업권보다 인권이 더 중요"… 인권위 '일방 질주'에 사회 곳곳 '아우성'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를 이유로 상업시설에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논리다. 또한 “공동체 시설에 아동의 출입을 막으면서 이들을 ‘골칫거리’로 인식하는 것이 우려스럽다”며 “아동을 배제하는 것은 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인권위의 권고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해당 식당을 계속 노키즈존으로 운영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모든 식당이 어린이를 받지 않는다면 분명한 차별이지만 특정 일부 식당이 영업전략으로 채택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는 의견도 있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은 “식당에서 어린이 사고가 나면 식당주나 종업원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어 영업주로서는 이런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며 “차별이라는 인권위 해석이 나와도 이를 법으로 강제하거나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 권고, 불수용 급증

차별과 영업권의 충돌뿐 아니라 학생 인권과 학습권의 충돌도 있다. 지난 17일 인권위는 조회시간에 휴대폰을 수거해 종례시간에 돌려주는 경기 A중학교의 ‘학교생활인권규정’을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헌법이 보호하는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단에서다.

학교와 교사들은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휴대폰 사용을 규제하지 않으면 수업 및 학습의 질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휴대폰을 수거하는 것은 교사에게도 부담이다. 분실할 경우 변상하는 등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른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육권을 고려한 조치라는 게 학교의 설명이다. 휴대폰 사용의 자유를 주는 것이 또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폭력과도 관련이 깊다”며 “휴대폰 사용을 규제하지 않으면 교내에서 선배 등에게 수시로 호출당하거나 카카오톡으로 온종일 괴롭힘당하는 걸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권위 권고를 불수용하는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엔 육아휴직을 낸 교사의 휴직기간도 교육경력에 포함해야 한다는 인권위의 권고안에 경기교육청이 ‘불수용’ 의사를 밝혔다. 현실을 고려할 때 특혜가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7월 ‘보건소장에 의사를 우선 임용하는 것은 차별행위’라는 인권위의 권고를 재심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보건소의 기능과 역할을 감안할 때 의료전문가인 의사를 보건소장에 우선 임명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인권문제가 공공과 민간 부문 모두에서 회피하기 힘든 과제이자 리스크로 부상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인권위가 현장과 괴리된 인권지상주의적 해법을 남발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때라는 지적이 만만찮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인권과 다른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떻게 타협하고 조정해야 할지가 우리 사회가 받아든 숙제”라고 말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