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전공의 폭행사건 끊이지 않는 의료계
“인내심 부족하고 힘든 일을 꺼리는 요즘 젊은이들의 나약하고 도피적인 결정이 아니다. 강력한 재발 방지 및 개선 대책으로 수련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

최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전공의들은 이 같은 내용의 호소문을 병원 측에 전달했다. 지난 13일 연세의료원 산부인과 1년차 전공의 두 명이 동반 사직한 것을 두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신촌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에서 수련받던 의사 두 명은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술자리에서 러브샷을 요구하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며 사직서를 냈다.

연세의료원은 19일 부원장, 전공의 대표 등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전공의를 면담하는 등 진상조사에 나섰다. 오는 25일 2차 회의를 열어 구체적 정황을 조사할 계획이다.

병원 전공의들은 이들의 사직이 단순 성추행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경직된 사제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 등이 도화선이 됐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13일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회의에서는 언어 및 신체 위협 발생 금지 방안 등을 논의했다. 수련받는 전공의의 인권을 지켜주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 같은 논의는 공염불이 됐다.

대학병원 교수의 후배 의사 폭행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분당서울대병원의 한 산부인과 전임의(펠로)가 병원 수술방에서 난소 양성종양 제거 시술을 하던 중 지도교수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병원에 민원을 냈다. 3월에는 한양대병원 성형외과 2년차 전공의가 교수 폭력을 못 견뎌 근무지를 이탈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부산대병원 전북대병원 등에서도 교수가 전공의를 폭행해 논란이 일었다. 폭력 사태가 잇따르자 대한의사협회는 8월 진료실 폭행 신고센터까지 마련했다.

[현장에서] 전공의 폭행사건 끊이지 않는 의료계
대학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면서 전공의를 교육하는 공간이다. 작은 사고도 환자 생명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위계질서가 엄격하다. 하지만 엄격한 위계질서와 폭력은 구분돼야 한다.

전공의들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병원 특유의 조직문화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한다.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것도 악순환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전공의 부당대우 실태조사에 나선 연세의료원이 시늉에만 그치지 않고 폭력 재발을 막을 현명한 방안을 찾기를 기대한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