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미디어 뉴스룸-MONEY] 절박함이 만든 기적 '청산도 구들장 논'…굽이마다 삶의 여정
최근 몇 년 사이 청산도는 ‘뜨는 섬’이 됐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한 데다 영화 ‘서편제’의 배경이 된 서편제길과 노란 유채꽃으로 유명해졌다.

꽃이 피고 축제가 열리는 봄이면 배편에 빈자리 하나 없다. 올해는 4월 한 달에만 9만여 명이 청산도를 방문해 최대 기록을 세웠다. 청산면 인구수 2000여 명의 45배에 이른다. 슬로시티, 서편제, 유채꽃, 바다가 사람들의 시선과 감정을 잡아끌지만 정작 세계농업유산이자 국가중요농업유산인 구들장 논을 보기 위해 섬을 찾는 이는 많지 않다.

구들장 논은 반농·반어촌 지역인 청산도 가운데 안쪽 산간 지역에 있다. 리 단위로는 부흥리, 양지리, 상서리 일원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산속에 있는 논’은 그 자체로 선조들의 지혜로 불린다.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계단식 논(다랑논)이 대표적이다. 세계에서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곳이 필리핀, 중국이다. 중국의 하니 계단식 논과 필리핀 이푸가오 계단식 논은 세계농업유산으로 먼저 지정됐다.

그런데 청산도의 구들장 논은 이것과 이름이 다르다. ‘구들장 논’이란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4년 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면서다. 국내 다랑논 전문가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계단식 논과 구분되면서 세계적으로 유일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농업유산으로서의 보존 필요성이 제기됐다.

청산도의 농지는 계단식 논과 구들장 논이 어우러진 풍경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구들장 논은 청산도 전체 농지 887㏊ 중 69.4㏊(7.8%)다.

이성식 완도군청 계장은 “다랑논이 주로 흙을 사용했다면 구들장 논은 돌을 쓴 게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돌 위에 만든 논’이다. 더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통수로의 유무다. 구들장 논은 필지당 2~3개의 통수로가 존재한다. 계단식 논과 달리 물이 논의 표면이 아니라 지하로 흐르도록 특별한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청산도는 예로부터 돌이 많고 흙이 부족한 데다 모래가 대부분인 사질 토양이다. 작물이 영양분을 받지 못할뿐더러 물이 다 빠져나가는 환경이다.

“그래서 선조들이 경사진 땅에 논을 만들 때 흙으로 메우지 못하고 돌을 쓴 거예요. 벼가 자라는 최소 부분만 얇은 층으로 흙을 깔고 그 아래는 돌과 진흙을 섞어 물이 밑으로 빠지지 않게 한 겁니다.” 이기채 구들장논보존협의회장(60)의 설명이다.

그것은 또한 물이 있는 수원지(계곡)와 물을 중심으로 위 논과 아래 논을 ‘연결’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산 위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효율적인 ‘연속 관계’를 통해 위 논에서 곧바로 아래 논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구조로 돼 있다.

구들장 논이 있는 장소를 보면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구들장 논이 있는 곳은 대개 산 위쪽이다. 평야 지대에 가까운 곳은 계단식 논이다. 평야에 가깝고 흙이 있는 곳은 계단식으로 조성할 수 있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토질이 좋지 않고 보이는 건 돌산뿐이다. 그래서 없는 논을 만든 것이다.

그럼 왜 굳이 밭이 아니라 논이어야 했을까. 청산도는 그 옛날 육지와 유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섬 안에서 자급자족해야 했다. 쌀은 해산물보다 귀한 음식이었다. 청산도에 지금까지 내려오는 ‘청산도탕’은 해물에 쌀을 조금 섞어 밥처럼 먹는 음식이다.

청산도에도 한때는 1만5000명의 사람이 살았다. 초등학교에는 3000명의 아이가 교육을 받았다. 그들을 교육해 육지로, 서울로 보낸 아버지의 아버지, 또 아버지의 아버지가 청산도 구들장 논을 만든 주역들이다. 돌 위의 논은 그야말로 절박함이 만든 기적이다.

완도=이현주 한경 머니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