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성일환 한국공항공사 사장(63)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서릿발 같은 인상을 준다. 환갑을 지난 나이에도 주름살 하나 없다. 몸에도 군더더기를 찾기 힘들고 웬만해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보기 힘들다. 넥타이는 수직으로 떨어지고 허리띠는 수평을 유지한다.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그는 이래야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성 사장은 이 같은 겉모습과 달리 14개 공항(인천공항 제외) 임직원으로부터 ‘큰형님’으로 불린다. 첫모습과 달리 임직원을 편안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임직원들은 “사장님께 보고하러 들어갈 때는 초긴장 상태지만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성 사장은 “임직원에게 호통만 치면 일이 되겠느냐. 그들의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 그들도 나를 존중해 서로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덕장의 리더십

성 사장이 ‘큰형님’으로 불리는 데는 그의 경영스타일도 한몫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라면 명칭에 걸맞게 최고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 아닙니까. 임직원들과 협의해 최선의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한 뒤 구체적인 실행은 임직원들에게 맡깁니다. 시시콜콜하게 간섭하면 부작용만 더 커지죠.”

그래서 성 사장이 공항 운영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것이 ‘신뢰경영’이다. CEO와 임직원이 상호 신뢰해야 공사가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임직원을 신뢰한다는 표시는 어떻게 낼까. “말로 아무리 믿는다고 해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노력하다가 겪게 되는 작은 착오나 실패는 오히려 격려해야죠.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평생 가는 법입니다.”

신뢰 구축의 출발은 투명경영

성 사장은 신뢰를 쌓는 또 다른 방법이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취임 후 직원들의 평가결과를 공개하고 이의신청 절차를 도입하는 인사제도 전반에 대폭적인 수술을 가했다. 종합근무평정제도도 개선하고 승진인사위원회를 기존의 단심제에서 복심제로 바꿨다.

또 승진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행정, 시설 기술 등 직렬 구분을 없앴다. 2급(팀장) 이상 간부급은 복수직렬로 직위를 공모하고 있다. 지난해 8개의 공모직위에 시설, 기술 등 다양한 직렬의 간부 44명이 지원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일하기 좋은 만족스러운 직장문화 개선을 위해 GWP(Great Work Place) 활동도 추진 중이다. 공통업무표준화를 통한 근로시간 단축과 현장인력 확충을 통한 4조3교대로 근무여건 안정화 등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정시 퇴근 캠페인도 하고 있다.

그는 사회공헌 역시 공기업의 책무 중 하나로 보고 올초 ‘사회공헌혁신센터’를 신설했다. 소음피해지역 지원사업과 다문화가정지원, 스포츠행사, 주민지원사업 등 여러 부서에서 추진하던 업무를 통합했다.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해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여했다.

안전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

성 사장은 하지만 절대 물러날 수 없는 하나의 가치가 있다고 했다. 바로 안전이다. 그가 안전이라는 타협불가능한 원칙을 정한 것은 공군 재직 시절 아픈 경험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비행기 조종에서 성 사장(당시 성 대위)과 넘버원을 겨루는 절친이 있었다. 한번 그가 1위를 하면 그 다음엔 친구가 1위를 하는 등 용호상박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몰던 전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순직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성 사장은 비행기와 관련된 일을 하는 동안엔 한치의 잘못이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성 사장은 공항공사 사령탑을 맡게 된 이후 이 같은 원칙을 더욱 강화했다. 나라의 관문인 공항에서 항공기 사고는 물론 폭발, 테러 등이 발생하면 국가와 공사의 신뢰가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 그가 사장으로 부임한 직후 제일 먼저 ‘보안과 안전 시스템’을 강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취임 직후 항공기 비정상 운항, 기상이변, 재난상황, 대테러 상황 등 공항에서 발생하는 모든 긴급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안전보안본부와 종합상황실을 구축했다. 종전에는 상황이 발생할 때만 ‘재난위기상황실’을 임시 가동했다. 종합상황실의 상시인원은 총 30명으로 재난상황반 14명, 테러상황반 16명으로 편성했다. 종합상황실 가동 이후 현지 영상 확인을 통한 정확한 위기 진단이 가능해 비상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고 위기대응 대처시간도 단축하는 성과를 냈다.

“공항공사는 수익 창출과 국민편익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안전과 보안이 먼저 자리잡지 않으면 공허한 목표가 되고 말죠.”

공군 경험이 CEO 밑거름

경남 창녕에서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74년 공군사관학교 26기로 입학한 뒤 40년을 공군에서 보냈다. 줄곧 전투비행사와 전투비행사 지휘관으로 지냈다. “비행기를 몰 때는 순발력이 중요하죠. 이때 다져진 것이 지금 큰 도움이 됩니다.”

1983년 북한 이웅평 공군 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북한 전투비행기가 서울 상공에 침투했다는 방송이 보도됐다.

그는 즉시 청주 공군부대에서 동료들과 함께 전투기를 몰고 상공에서 전투 태세를 갖췄다. “나중에 보도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지만 즉각 전투 태세를 갖추는 것이 군인의 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는 CEO라면 걸맞은 체력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 사장은 “체력이 뒷받침돼야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고 되물었다. 사관생도 시절에는 축구선수로, 전투비행대대 근무 시에는 배구선수를 지냈다. 축구선수 합숙훈련 때 당시 공군 승무팀 소속인 차범근 선수가 연습게임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는 “차범근 선수 뒷다리를 한번 걸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워낙 빨라 거는 데 실패했다”고 회고했다.

그의 체력은 요즘도 알아주는 편이다. 매일 새벽 6시30분 테니스로 아침을 시작한다. 틈나는 대로 자전거를 타며 땀을 흘린다. 2014년 유라시아 자전거 대장정(800㎞. 베를린~바르샤바)에서도 완주한 뒤 자전거로 국토종주와 동해안, 제주 해안을 종주했다.

“조종사 양성에 앞장설 터”

성 사장은 올해부터 항공 조종사 양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자가용 비행기와 저비용항공사(LCC)가 늘면서 조종사가 태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은 항공대학과 항공훈련원에서 조종사를 양성하고 있지만, 훈련시설과 인프라가 부족하다. 교육훈련 이수 후에도 미국 호주 등 외국으로 나가 제트과정교육을 받고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실정이다. 이에 한국공항공사는 김포공항 화물터미널 내에 항공훈련센터(강의실 시뮬레이터)를 설치하고 제트전환과정을 추진하는 등 선진국 수준의 조종인력양성 체계를 구축하고 훈련생을 모집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24일 미국에서 최신형 훈련항공기(Citation M2)를 도입했다.

그는 “임기 동안 한국공항공사의 ‘비전2025’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다짐했다. ‘비전2025’의 목표는 여객 수 7000만명을 1억2000만명으로, 운영공항을 14개에서 20개로 확대하는 것이다. 성 사장은 “최고의 안전 및 서비스를 기본으로 신기술을 적극 도입해 매출 8000억원을 2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 성일환 사장 프로필

△1954년 경남 창녕 출생 △1973년 대구 영남고 졸업 △1978년 공군사관학교 졸업(26기) △2000년 한남대 경영학 석사 △2001년 제29전술개발훈련비행전대장 △2008년 제41대 공군사관학교 교장 △2010년 공군참모차장 △2011년 공군교육사령관 △2012년 제33대 공군참모총장 △2016년~ 제11대 한국공항공사 사장

김인완 기자 i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