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우 배민프레시 대표가 배민프레시에서 판매 중인 반찬과 국 제품으로 밥상을 차린 후 메뉴를 소개하고 있다.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조성우 배민프레시 대표가 배민프레시에서 판매 중인 반찬과 국 제품으로 밥상을 차린 후 메뉴를 소개하고 있다.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 박희진 기자 ] 배달 앱(응용프로그램) '배달의민족' 계열사인 '배민프레시' 직원들은 지난달 장문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조성우 배민프레시 대표(37·사진)가 직접 보낸 이 메일은 '파괴적 혁신'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내용은 배민프레시가 사업초기에 내걸었던 '신선식품'이라는 타이틀을 과감히 버리자는 것이었다. 회사의 정체성과도 직결되는 큰 결단이자 혁신적인 시도였다. 직원들은 당황했지만 조 대표는 단호했다.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었다.

"우리가 왜 도시락, 샐러드를 버리고 '반찬'에 집중해야 하는 지를 메일에 썼습니다. 반찬 말고 다른 제품들도 잘 팔리고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반찬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 직원들에게 설명했죠."

배민프레시가 2013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새벽배송'은 최근 유행처럼 번졌다. 신선식품을 배달해주는 유사 서비스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설상가상으로 대기업들까지 반찬 배달 시장에 뛰어들었다. 조 대표는 차별화 방안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배민프레시는 올 들어 회사 슬로건을 '내 손안의 반찬가게'로 바꾸고 반찬과 집밥 제품을 강화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 공장의 도시락 생산 라인도 반찬용으로 모두 전환했다. 조 대표를 만나 반찬과 집밥에서 차별화의 답을 찾은 이유를 들어봤다.
조성우 대표는 "그동안 '새벽배송'과 같은 그릇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골라담을 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배민프레시는 올해 반찬과 집밥에 역량을 모아 '모바일 넘버원 반찬가게'로 자리매김한다는 전략이다.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조성우 대표는 "그동안 '새벽배송'과 같은 그릇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골라담을 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배민프레시는 올해 반찬과 집밥에 역량을 모아 '모바일 넘버원 반찬가게'로 자리매김한다는 전략이다.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다품종'→'선택과 집중' 전략 수정

"국내 신선식품 시장 규모는 대형마트까지 포함해 연간 80조원이 넘어요. 시장도 크고 종류도 다양하니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는 최대한 품목을 많이 넣자는 전략이었어요. 도시락은 물론 샐러드 쥬스 빵을 전부 배달했죠. 그렇게 몇년 동안 시장을 지켜본 결과 영역을 좁혀야 서비스를 더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민프레시의 인기 제품인 한옥집 김치찜과 계란말이, 밀푀유나베, 마른반찬 등.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배민프레시의 인기 제품인 한옥집 김치찜과 계란말이, 밀푀유나베, 마른반찬 등.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사업 성적을 뜯어보니 반찬의 인기가 가장 높았다. 지난달 기준 배민프레시의 반찬 주문 수는 1년 전과 비교해 10배나 증가했다. 재구매비율도 다른 제품보다 월등히 높았다. 맞벌이 부부나 자녀를 둔 부모, 1인가구를 중심으로 집밥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있었다는 설명이다.

온라인 반찬 시장의 성장 잠재성도 높게 봤다. 아직 돈주고 반찬을 사먹는 습관이 자리잡지 않은 데다 기존 온라인 반찬쇼핑몰 대부분이 개인용컴퓨터(PC)를 기반으로 해 이용자 확보가 제한적이었다는 판단이다.

조 대표는 배민프레시와 같은 모바일 플랫폼의 등장으로 온라인 반찬 시장이 급격한 성장기를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해 2월 앱을 출시한 배민프레시는 현재 전체 주문의 82%가 모바일에서 발생하고 있다. 누적 앱 다운로드 수는 35만건에 달한다.

"스마트폰으로 옷이나 신발을 쇼핑하는 사람은 많잖아요. 앞으로는 반찬도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자유롭게 쇼핑하는 일이 익숙해질 겁니다. 현재 전체 반찬 시장에서 모바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장 가능성이 큰 셈이죠."

◆맛집 찾아가 삼고초려…7만인분 팔린 김치찜

편의성만큼 반찬의 신선도와 맛도 높였다. 배민프레시의 모든 반찬은 오후 1시까지 주문된 물량을 그날 오후에 만들어 다음날 새벽에 배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보존제를 따로 넣지 않아 유통기한은 짧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고 유통기한은 수개월인 일반 가정간편식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조성우 대표는 "빵이나 샐러드는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이지만 밥과 반찬은 다르다"며 반찬 배달 서비스에 대한 고정적인 수요를 자신했다.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조성우 대표는 "빵이나 샐러드는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이지만 밥과 반찬은 다르다"며 반찬 배달 서비스에 대한 고정적인 수요를 자신했다. /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배민프레시는 오프라인 맛집이나 반찬가게와의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맛집 레시피를 공수해 상품을 개발하거나 동네 유명 반찬가게를 입점시켜 소개한다. 배민프레시 인기 제품으로 자리잡은 '한옥집 김치찜'은 조 대표가 두 달 동안 삼고초려한 끝에 레시피를 얻어냈다.

"서울 서대문구에 한옥집이라는 역사 깊은 한식집이 있어요. 여기 김치찜을 평소에 너무 좋아해서 꼭 배민프레시 반찬 메뉴로 만들고 싶었어요. 사장님을 설득한 끝에 레시피를 얻어 저희 자체상표(PB) 제품으로 출시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후 사장님의 제안으로 만든 계란말이 떡갈비 김치제육볶음 등 한옥집 메뉴는 지금까지 7만인분이 넘게 팔렸어요."

자체 앱을 만들기 어려운 영세한 식당이나 동네 반찬가게의 경우 배민프레시 입점이 매출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부 반찬가게는 온라인 매출이 오프라인을 뛰어넘을 만큼 성과가 좋다.

◆올해 목표 매출 350억 이상…"경쟁사는 편의점"

올해 배민프레시는 반찬과 모바일에 집중하면서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지난해에는 1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3년 동안 연매출은 해마다 전년 대비 300%씩 증가하고 있다. 이같은 성장세를 감안해 올해 목표 매출은 350억~400억원으로 잡았다. 올 하반기에는 월 기준으로 손익분기점 돌파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에서 경쟁사를 논하기에는 아직 반찬 시장 자체가 덜 성숙됐어요. 동네 반찬가게나 다른 온라인 반찬쇼핑몰과 다같이 시장을 키워야 할 때죠. '반찬도 간편하게 사먹는' 소비 습관을 자리잡게 하는 일이 우선인 것 같아요."

미래의 경쟁사를 묻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편의점을 지목했다. 접근성과 제품 다양성을 앞세운 편의점이 곧 반찬 시장까지 위협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편의점에 가보면 이미 족발 떡볶이 계란말이 같은 간편식을 팔고 있어요. 편의점의 잠재적인 경쟁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봐요. 이에 맞서 배민프레시는 편의점을 뛰어넘는 모바일의 편리함과 건강하고 신선한 반찬으로 승부할 계획입니다."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