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젠킨스 감독의 영화 ‘문라이트’.
배리 젠킨스 감독의 영화 ‘문라이트’.
“달빛 아래에선 흑인들도 푸르게 보이지.”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다"
배리 젠킨스 감독의 영화 ‘문라이트’에 나오는 대사다. 흑인의 얼굴이 검다고 해서 늘 어둡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달빛 아래에 서면 그들도 푸르게 빛이 난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좀처럼 달빛은 내려앉지 않는다. 영화 속 주인공 소년 샤이론의 삶은 더 그랬다. ‘검둥이’란 편견에 갇힌 흑인. 게다가 동성애자라는 또 하나의 짐은 그의 인생을 더 무겁게 짓눌렀다. 그를 빛나게 해줄 달빛은 어디에도 없어보인다.

흑인 감독이 만든, 흑인 배우들만 나오는, 흑인들의 얘기를 다룬 이 작품 자체도 마찬가지 운명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기존 공식대로라면 철저히 어둠에 갇혀 있어야 할 작품이다. 그런데 기적처럼 달빛이 비쳤다. 지난달 26일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탔다.

‘백인들의 잔치’에서 흑인들이 푸르게 빛난 사건이었다. 축하와 감동이 밀려들지만 이내 많은 사람의 마음속엔 의구심이 든다. ‘흑인이 상을 받는 일이 세계가 놀랄 일인가? 지금도….’ 의문은 이어진다. ‘달빛을 받을 흑인은 또 언제쯤 나올까.’

문화·예술계에서 차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어떤 영역보다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것처럼 보여도 정작 안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소수자가 존재한다. 인종·남녀 차별이 대표적이다. 이런 논란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정책 등과 맞물려 더 부각되고 있다. 이에 대항이라도 하듯 스타들이 잇달아 문제를 제기하고, 차별을 주제로 한 콘텐츠도 이어지고 있다. 언제쯤이면 이런 노력이 달빛이 돼 수많은 ‘샤이론’을 비출까.

지난달 13일 열린 그래미 시상식은 그 길이 쉽지 않음을 보여줬다. ‘올해의 앨범상’ 등 다섯 개 부문을 휩쓴 아델은 인종의 장벽에 부딪힌 비욘세를 위해 트로피를 쪼갰다. 비욘세는 앨범에서 자신처럼 흑인 여성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내용을 담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베스트어번컨템포러리 앨범상’ 하나에 그쳤다. 아델은 답답해하며 “그녀가 올해의 앨범상을 타려면 도대체 무엇을 더 해야 하느냐”는 메시지를 던졌다.

문화·예술계에선 여성의 지위도 낮다. 지난해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여성의 대사 비중은 27%에 불과했다. 여성 주인공도 29%에 그쳤다. 국내에서는 더 심하다.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전체 개봉작 중 여성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 10.7%에서 2015년 5.2%로 역주행했다. 여성에겐 조연과 스태프가 어울린다고 말하는 듯한 숫자다.

편견은 창의성의 원천인 다양성을 갉아먹는다. 고(故)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우리도 그들(백인)도 편견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장벽을 쌓는 가해자 또한 피해자가 된다는 얘기다. 1900년대 오스트리아 빈이 모더니즘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보자. 반유대주의에 맞서 유대인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예술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답례라도 하듯 막강한 재력으로 예술가를 지원했다. 유대인들은 당시 하류문화로 취급받던 영화에도 투자해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차별이 사라졌을 때 문화가 꽃을 피운다. 다양한 나무가 있어야 숲이 울창해지듯.

그래도 차별을 거부하는 콘텐츠는 나온다. 미국 우주산업 발전에 기여한 흑인 여성들을 다룬 ‘히든 피겨스’, 흑백 간의 결혼이 불법이던 당시 흑백 부부를 다룬 ‘러빙’ 등이다. 둘 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히든 피겨스는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NASA) 최초로 우주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된 흑인 여성들을 그린다. 이들은 흑인이란 이유로 멀리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써야 했고, 여성이기 때문에 회의 참석도 어려웠다. 그러나 당당히 이를 이겨냈다. 이 작품의 대사 한마디는 불변의 진리, 그리고 진리와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는 현실을 담고 있다.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