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백악관 처칠상 소동
미국 백악관에 때아닌 처칠 두상(頭像) 소동이 벌어졌다. 지난 주말 언론에 집무실을 처음 공개한 행사에 풀기자로 들어간 타임지 기자가 “트럼프가 킹 목사 두상을 치우고 처칠 두상을 갖다놨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를 두고 ‘오바마 색깔 지우기’에서부터 ‘인종차별적 행동’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그런데 이게 오보였다는 것이다. 하필 열려진 문과 백악관 직원에게 가려 킹 목사 두상이 취재진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타임지 기자는 나중에 기사를 수정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CIA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정직한 족속”이라고 비난했다.

처칠 두상은 2009년 오바마 전 대통령 취임 당시에도 소동을 빚었다. 원래 이 처칠 두상은 9·11 직후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양국 우의를 다지는 차원에서 ‘대여’해줬던 것이다. 부시 재임 기간 내내 집무실에 있던 처칠 두상을 오바마는 킹 목사 두상으로 바꿔버렸다.

당시에는 문제 삼는 이가 적었는데 2012년께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밋 롬니가 논란의 불을 지폈다. 자신이 당선되면 “처칠 두상을 백악관 집무실에 다시 갖다 놓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를 추가 취재한 한 기자가 “오바마가 처칠 두상을 이미 주미영국 대사관에 돌려줬다”고 보도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백악관은 즉각 “명백한 오보”라며 “처칠 두상은 집무실이 아니라 대통령 주거공간 쪽에 잘 보존돼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기자가 결정적인 반격타를 날렸다. 원래 처칠 두상은 2개로 둘 다 ‘야곱과 천사’로 유명한 제이컵 엡스타인의 조각인데, 집무실에 있던 것은 영국 대사관에 돌려줬고, 주거공간에 전시돼 있는 것은 영국이 1960년대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에게 선물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이게 사실로 드러났다. 나중에 영국을 방문한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인 킹 목사의 두상을 집무실에 두고 싶었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은 지 2주 만인 1941년 12월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3주간 머문 처칠을 잊지 못한다. 그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만든 구상이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믿고 있다.

처칠 두상이 돌아오게 된 것은 나이젤 페라지 전 영국 독립당 대표가 제안한 덕분이다. 트럼프는 노련하게 처칠과 킹 목사 두상 둘 다 두는 선택을 한 것이다. 마침 첫 정상회담 상대로 백악관을 방문하는 사람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