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갑질' 국회 청문회 직접 나가보니
재벌 총수 9명을 포함해 14명의 증인과 4명의 참고인이 출석한 ‘최순실 사건’ 국회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 국민연금공단 전임 이사장 자격으로 출석했다. 13시간이라는 긴 시간에서 약 10여분 동안 특위위원 17명 중 7명으로부터 총 28개 질의를 받고 답변했는데 절차와 내용에서 참으로 끔찍한 하루였다.

청문회는 출석요구 증인채택 운영과정 모두에서 문제투성이다. 우선 청문회의 출석요구를 살펴보자. 필자가 받은 증인 출석요구서에는 무슨 사안에 대해 증언을 해 달라는 것이 전혀 명시돼 있지 않다. ‘최순실 …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달라는 것이 전부다. 처음부터 증인으로 채택된 이유를 수긍하지 못했고 청문회장에서 어느 한 의원으로부터도 의미 있는 질문을 받지 못했다. 사실 작년 필자의 이사장직 강제 퇴임과 관련해 폭탄급 폭로 사항이 있었는데 질의를 하지 않아 그냥 나왔다.

국회의 무개념 무차별 편의주의적 증인 채택 횡포는 중단돼야 하며 앞으로 출석요구서는 반드시 증언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혀서 발급돼야 한다. 증인 채택에 신중을 기하고 채택된 증인은 모두 반드시 출석하도록 해야 한다. 채택된 증인이 나오지 않는 것은 국회의 망신이다. 같은 사안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나 질병으로 의사 진단이 나와 있는 경우 증인 채택은 억지다.

다음 청문회 운영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증인은 줄곧 자리를 지키도록 강요하면서 의원들은 수시로 이석하며 때론 반 이상이 자리를 비우는데, 이는 의원의 갑질이고 횡포다. 모든 증인을 다 불러 놓고 의원 중심으로 질의를 하기보다는, 개인별 또는 사안별로 몇 그룹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출석시키고 질의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가장 질의를 많이 받은 모 부회장의 경우 436회의 질의에 39분 동안 답변했다. 식사시간을 빼고도 청문회가 총 8시간 진행됐으니 증인과 참고인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가?

청문회장에서 재벌 총수들의 질의 답변 과정을 직접 지켜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우울했다. 필자의 눈에 비친 총수들은 소금에 절인 배추 모습이었다. 불법모금에 참여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국민에게 미안해서 머리를 들지 못할 순 있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잘못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면 된다.

정치권이 자신들의 허물은 뒤로 감추고 기업인들을 심판대에 올려놓고 적폐를 근절하겠다는 적반하장에 대해 국민과 언론은 왜 침묵하는가. 정경유착은 정치권력의 책임이지 기업인들의 책임이 아니다. 총수들은 정치권력의 횡포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 제기를 강하게 했어야 했다.

사실 청문회는 대기업과 대기업 총수에게 주어진 엄청난 기회였는데 이를 활용하는 총수를 보지 못해 매우 아쉬웠다. 자신의 훌륭한 경영철학을 설명하고 기업의 희망찬 미래상을 제시하면 국민들은 박수칠 것인데 왜 이런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는가.

전경련은 해체될 수도, 존속될 수도 있다. 연구소 형태로 새로 태어날 수도 있다. 전경련은 기업들이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든 민간단체다. 따라서 정부나 정치권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 전경련의 존속 여부를 두고 재벌 총수 개개인에게 찬성 여부를 청문회장에서 공개적으로 묻는 인민재판을 하는 어느 국회의원의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었다.

이 중차대한 청문회에서 필자를 슬프게 한 것들이 또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지역구 사업 챙기기에 열심인 의원이 있었고, 사업과 광고 이야기를 하는 의원도 있었다. 다른 하나는 진보학자와 진보정치인들이 사전 모의해 재벌을 성토하는 드라마를 청문회장에서 멋지게 연출하는 것이었다. 청문회의 절차, 과정, 그리고 내용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최광 <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석좌교수 >